[사회과학원포럼, 2014. 7. 1]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통해서 본 한중관계”
2014.12.01 2151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통해서 본 한중관계
이정남(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중국연구센터장, 사회과학원 객원연구위원)
7월 3일-4일 사이에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한국을 방문한다. 작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방문에 대한 답방형식이지만, 작년 초 취임이후 두 정상이 비공식적인 회동까지 합쳐서 모두 5번째 만남을 가질 정도로 양국관계가 긴밀하다는 점, 그리고 수교이래 최초로 북한보다 먼저 한국을 방문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는 한중 양국관계의 단계 격상, 북핵문제와 6자회담,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한 공동대응, 한중 FTA문제 및 양자간 경협문제가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입장에서는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가 한반도 통일과 북한 및 북한핵문제를 실질적으로 논의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 될 것인가가 주요한 관심사이다.
그러나 현재 한중관계의 발전은 동아시아 권력질서의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으므로, 동아시아 권력질서의 재편이라는 보다 거시적인 맥락에서 한중관계의 현황과 발전 방향을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현재 동아시아는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과 미국이 이 지역의 패권적인 지위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전개하고 있다. 중국몽을 전면에 제기하면서 등장한 시진핑 지도부는 강대국외교를 통해서 미국주도의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현상변경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은 재균형정책을 표명하면서 동맹국 및 우호국들과 함께 대중국 포위망을 구축해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질서를 유지하려 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정책의 중심에 놓여있으며, 미국은 한미일 3각 안보협력체제 구축을 통해 재균형정책의 공고화를 도모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중국은 주변국외교를 최우선 순위에 놓으면서 주변국의 지지에 기초하여 지역강대국으로 부상한다는 전략을 수립하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의 설립을 통해 아시아지역 국가들과 기반시설 및 금융협력을 강화하여 중국 주도 경제질서의 제도화 추진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지난 5월 상하이에서 열린 아시아교류 및 신뢰구축 회의(CICA)에서 아시아는 아시아의 손으로 라는 슬로건을 내걸면서 미국을 배제한 아시아 안보질서의 건립을 제기한 상황이다.
그러나 미국과의 치열한 경쟁 구도속에서 중국이 직면해 있는 상황이 그리 녹록치 만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지역의 또 다른 강대국인 일본은 미일동맹의 강화를 추진함과 동시에 우경적 역사인식과 집단자위권의 보장을 통해 동아시아에 대한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더구나 전통적인 우호국가인 북한은 핵개발을 저지하려는 중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잇따르는 핵과 미사일 실험으로 중국의 체면을 구기게 만들어 양자관계의 부분적인 경색국면을 야기하고 있으며, 급기야 최근에는 아베내각과 북일 스톡홀름 합의를 통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함으로써 일본을 고립시키려는 중국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센카쿠(중국명: 다오위다오(釣魚島)), 남사군도와 서사군도 등 해상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주변국가들도 미국과 힘을 합쳐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에게 뿐만 아니라 중국에게도 그 어느 때 보다도 견인해야 할 중요한 국가로 부각되고 있다. 한국을 향한 중국의 적극적이고 우호적인 태도는 시진핑정부의 출범초부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 5월 26일, 시진핑의 한국 방문을 조율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새로운 지역 및 국제정세의 심각한 변화에 따라 우리는 한국을 더욱 더 긴밀한 협력 동반자로 선택하고자 한다”고 말하였다. 최근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이번 시진핑의 방한을 통해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에서 ‘전면적 협력 동반자관계’로의 한중관계 격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러시아 및 파키스탄과 동일한 수준의 양자관계 설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을 향한 중국의 이와 같은 적극적인 접근은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이후 핵개발 및 제재문제를 둘러싼 중국의 강경대응으로 다소 소원해진 북중관계에 비교되면서 더욱 더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이러한 적극적인 태도는 한국으로서도 하나의 기회이다. 한국에게 있어 중국은 제일의 무역 대상국이자 최대의 수출입대상국이고, 외자투자와 유학생교류 등에서도 최상위급 대상 국가이다. 한국경제에 있어 중국의 중요성은 이미 미국과 일본을 초월하였다. 또한 한반도의 통일과 북한 핵문제의 해결에 있어서도 중국과의 협력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의 관계 발전에 적극적인 중국의 태도는 양국 관계에서 그동안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한반도 통일과 안보영역의 실질적인 교류협력을 진전시키는 데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한중관계 증진과 관련한 지역정세에 있어 이처럼 우리에게 유리한 요소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선적으로 미국은 대중국 견제의 차원에서 한미동맹의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미사일방어(MD) 체계 가입,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도입 및 이와 연동된 엑스밴드 레이더 설치 등과 같은 요소들은 미중 양국 사이에서 한국의 선택을 강요받는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으며, 한중관계의 증진은 이러한 선택의 압박을 증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한국의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의 불참을 요구한 바 있다. 또한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한일관계와 비교되는 한중관계의 증진은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 외교정책의 방향이 대중 편향적으로 쏠리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게 할 가능성이 높다.
얼어붙은 한일관계도 중대한 문제다. 지금과 같이 한일관계가 거의 단절되다시피한 상황에서 한중관계의 증진과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한 공동대응은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중일 간 지역질서의 주도권 경쟁에 있어 한국이 중국의 편에 서 있다는 인상을 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일본과의 협력을 통한 대중국 레버리지의 사용은 더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한편, 남북 간의 관계 경색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속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이로 인해 북한 및 북핵문제에 대한 중국의 압박을 강하게 요구하기 어렵다는 한중 양자 간 문제도 존재하고 있다. 더 나아가 한중관계가 갈수록 긴밀해지고 있는데 반해, 북중관계가 소원해 지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중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중국의 국익에 대한 엄중한 침해로 간주하면서, 에너지 공급, 자금왕래, 인적왕래 등 다방면에서 제재를 강화하면서도 양국 간 교류관계는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는 2013년 북중 무역액이 65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0.4% 성장한 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2009년 27억 달러, 2010년 34억 달러, 2011년 56억 달러, 2012년 59억 달러 등, 비록 북중 간의 무역액이 절대적인 규모에서는 여전히 작지만, 지속적인 성장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다소 퇴색되기는 하였지만, 중국에게 있어 북한은 여전히 이념적으로 같은 길을 가는 국가이고, 동북 변경지역의 중요한 전략적 완충지대로써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도 동아시아를 둘러싼 미중간의 경쟁국면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전략적인 요충지에 위치한 북한에 대해 중국이 지속적인 강경태도를 취하거나 김정은을 궁지로 몰아넣기는 어렵다.
여하튼, 동아시아 지역패권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은 한국을 서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는 시진핑은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로의 한중관계 격상, 한중 FTA와 양국 경제협력, 일본의 우경적 역사인식과 군사대국화에 대한 공조 등에서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이러한 각종 현안들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통해 양국 간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할 뿐만 아니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 걸맞게 북한 급변사태, 한반도 통일과 탈북자문제 등에서 실질적인 협력이 가능하도록 중국에 강하게 요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중관계는 동아시아 지역패권을 둘러싼 중미간 경쟁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조건없는 조기 6자회담 개최를 주장하는 중국의 주장과 한·미·중 공조를 통한 대북 압박 및 ‘핵포기를 위한 진정성있는 조치’라는 전제조건을 강조하는 한국의 입장이 서로 조율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중국은 동북아협력 구상에 있어서도 중국 주도의 안보 및 경제 질서 수립구상에 한국이 동참하게 될 가능성의 증대를 내심 바라고 있겠지만, 이에 대해 한국이 지지를 표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이 미사일방어(MD) 체계 가입,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도입 및 이와 연동된 엑스밴드 레이더 설치 등과 같은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에 대해 중국의 우려가 에둘러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중관계는 현안을 해결하는데 올인하는 단기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보다 거시적인 측면에서 동북아질서의 재편과정에 대한 한국의 주도적 참여가능 조건창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즉, 동아시아 질서 재편과정에서 통일을 이룩하고 한반도의 위상을 확립한다는 거시적 목표와 전략속에서 시진핑의 한국방문에 대한 의미를 파악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혜안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한미일 3각 안보협력체제로부터 분리시키고자 하는 중국의 의도를 분명히 읽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쪽으로 경도되지 말고 균형을 유지해야 하며, 한중, 한미, 한일관계의 중첩된 외교관계를 다각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또한 한반도에 대한 강대국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향후 동아시아질서 재편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도 시급하다.
한국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는 상황은 한국의 전략적인 가치가 상승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요인도 있지만, 어느 한쪽에 편승을 강요당하는 조건은 엄중한 외교적 부담이다. 따라서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동아시아의 권력질서 재편에 따른 상황변화를 명확히 인식하며, 단기적인 외부정세에 휘둘림 없이 국가이익의 우선 순위에 따라 단계별 외교전략을 수립하고 적절한 외교수단을 동원함으로써, 외교활동의 전 과정을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이른바 ‘자기주도외교’를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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