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기념좌담] 통일외교, 새로운 균형추를 찾아라!
2015.10.16 3788
통일한국
2015년 10월 통권 382호
광복 70주년 기념 좌담 ‘통일 한반도를 향해!’ 한반도 통일외교, 새로운 균형추를 찾아라!
한국이 국제사회의 지지와 동참을 획득하고 나아가 주변국들을 통일의 협력자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한반도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적 과제다. 과연 대한민국은 주변국이 동의하고 함께 협력해 나가는 통일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가. 미·중·일·러 등 한반도 주변4강의 통일한국에 대한 이해관계를 살펴보고, 우리가 걸어가야 할 바람직한 통일외교의 길을 모색해본다(편집자주).
“선제적 통일비전 제시로 주변국 이끌어 나가자”
통일외교란?
“우리와 주변국이 생각하는 통일, 서로 다를 수 있어” “통일 우호적 환경 만들고 주변국 지지 이끌어내는 과정”
김천식
광복과 분단의 70년을 동시에 맞는 올해 통일과 관련한 논의가 많이 있었고 최근 대통령의 방중 이후로 이른바 통일외교가 우리 사회에서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분단이 비록 전부는 아닐지라도 상당 부분 국제정치의 틀 속에서 이뤄져 왔던 것이기 때문에 통일이라는 과정도 국제적 측면을 완전히 배제한 채 추진될 수 없고, 따라서 통일을 위한 외교에 대한 중요성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통일외교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현승수
통일한국에 대한 한반도 주변 4강의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고 또 한국의 통일관이 주변 4강의 통일관과 차이점을 가질 수 있죠. 이런 시각의 차이를 조율해 나가려면 외교적으로 다양하고 많은 변수들을 조정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합니다. 통일외교는 결국 한반도의 운명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주변국들의 이해관계를 면밀히 파악하고 우리의 통일 이후 비전에 맞춰 지속적으로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황지환
통일외교란 주변국들이 우리의 통일을 지지할 수 있도록 하는 거의 모든 외교적 행위를 말한다고 볼 수 있겠죠. 우리 헌법에는 통일이 명문화 되어 있고, 이를 토대로 한국이 대외적으로 추진하는 외교 행위의 모든 것은 곧 통일을 지향해 나가는 이른바 통일외교라 할 수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주변국들이 지지할 수 있도록 하는 행위라고 볼 수가 있겠죠.
이정남
통일외교는 대외적으로 통일을 추동할 수 있는 우호적인 환경을 만드는 작업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통일에 대한 비전을 주동적으로 제시하고 주변의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내는 행동이 될 것입니다. 주변국이 통일을 지지하는지 또는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분석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떠한 통일을 이룩할 것인가에 대한 우리의 방향성을 내거는 작업에 중심을 둘 때 통일외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변국으로부터 더 많은 실익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반도 통일 과정에 대한 주변4국 인식?
“미국, 한·미동맹 약화 및 통일한국의 중국경사화 우려” “일본, 반일적 성격 가진 통일한국 등장 가능성 우려” “러시아, 북한 체제붕괴 통한 통일에 위협감 가져” “중국, 미국 막강한 상태에서 북한 붕괴나 통일 우려”
김천식
예, 말씀하셨듯 통일외교는 통일에 대해 주변국들이 지지할 수 있도록 상호간 이해관계를 일치시켜 나가는 과정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국제관계는 기본적으로 국익을 추구하는 것인데, 미·중·일·러 등 한반도 주변 4국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국가들입니다. 이 4개국이 한반도 통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어떤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지, 지금까지 4국에 대한 한국의 통일외교는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살펴보죠.
최희식
지금 상황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한국 주도의 통일일 것입니다. 이를 전제로 하면 일본의 통일한국에 대한 태도는 미국과 상당 부분 일치되는 부분이 있죠. 미국과의 동맹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통일한국을 지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봅니다. 국가이익 측면에서 보면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으로 상정되었던 핵과 미사일 문제가 해결되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죠. 또 남북 긴장관계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니 한반도의 평화로 인해 안정적인 국제질서가 구축된다는 측면에서 또한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한국 주도의 통일은 한·미동맹이 유지된다는 가정을 놓고 보면 통일한국이 중국에 대한 방파제 역할을 수행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에 여기에도 찬성하는 입장을 보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일본이 우려하는 것은 ‘통일한국이 반일적 성격을 가진 국가가 되지 않을까’라는 점이죠. 즉 일본에 대한 통일외교를 추진함에 있어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통일을 이룩하면 핵이나 미사일 등의 안보위협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계속 홍보해야 하고 동시에 통일한국이 반일적 성격을 가진 국가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부분을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박근혜 정부의 통일외교를 평가해 보자면 일본과의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특히 위안부 등 역사적 문제를 중심으로 강고한 원리원칙적 접근을 취했기 때문에 오히려 한·일관계가 개선될 수 있는 여지가 좁아졌고, 이로 인해 한·미관계에서도 암묵적인 긴장관계가 유발되었다는 점입니다. 즉 한·일관계 악화의 근본적인 책임은 일본의 우경화도 중요한 이유지만 정부의 대일 원리원칙주의적 접근도 그 중 하나라는 국제적 인식이 나오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최근 중국을 방문한 이후 전개되는 국면을 보면 정부의 외교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봅니다. 이번 방중 이후로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가 수면 위로 올라왔고 이로써 우리는 일본에게 한·중·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할 것이고 그것이 한·일관계 개선에 일종의 중간단계 역할을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게 된 것이죠. 이런 측면에서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고, 앞으로도 이런 실용주의적인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을 가진 외교가 필요하다고 보고요. 이를 통해 한·일 신뢰관계가 구축되고 우리의 통일외교에 대한 기본적 인식을 확장해 갈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황지환
미·중·일·러 등 한반도 주변 4국이 통일을 지지하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4국의 공식적 입장은 한반도의 통일이 남북한을 포함해 주변국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도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지지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으로 보면 각국이 사용하는 용어들은 조금씩 다릅니다. 한반도 통일을 지지한다는 공식적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그 안에서 나름대로 최선의 국가이익을 고려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은 한국 주도의 평화적 통일에 가장 적극적으로 동의할 것입니다. 중국도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지지한다는 생각이고요. 러시아는 극동 지역의 개발과 함께 안정을 꾀할 수 있으니 한반도 통일에 관심이 높을 것이고 일본 역시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안보적 위협이 해소될 계기가 될 수 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겠죠.
하지만 여기에는 각국이 전제하는 아주 미묘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자국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 방식’으로 추진되는 한반도의 통일이라는 것이 지지의 전제가 되죠. 미국은 기본적으로 동북아에서 미·중관계를 가장 중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운용해 나가는 데 있어서 한반도의 통일이 악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한·미동맹의 약화가 나타난다든지 통일된 한국이 중국경사화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등을 우려할 것입니다.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한반도의 통일에 관한 각 국가별 이해관계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면밀하게 고려하면서 대외정책을 진행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까지 박근혜 정부의 주변 4강에 대한 통일외교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최근 한·중 정상회담의 과정을 통해 보더라도 정부가 한·미동맹을 유지해 나가는 가운데 한·중관계를 조화롭게 발전시켜 나간다는 목표를 추진해 나가는 과정이 상당한 진전을 이뤄내고 있다고 봅니다.
현승수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한국이 원하는 통일이 북한의 체제붕괴를 유도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통해 이를 불식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최근 보이고 있는 북·러 간 밀착관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고요. 북한 체제붕괴를 통한 한반도 통일에 대해 러시아가 왜 위협감을 느끼고 있는지는 명확합니다. 러시아는 통일된 한국과 한반도에서 국경을 접하는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2008년 러시아는 조지아와 전쟁을 치렀고 최근 크림반도 병합 사태 등을 겪으면서 국경 주변 지역으로 서방과 미국의 군사동맹체가 주둔하거나 확대되는 것을 상당한 안보적 위협감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따라서 러시아는 한반도의 통일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찬성한다는 입장이지만 그것이 만약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북한의 붕괴를 통해 이뤄져 러시아의 안보적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반대의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봅니다.
지금 러시아는 극동 시베리아를 중심으로 국운을 건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러시아가 극동 지역 개발을 통해서 북한을 개입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남·북·러 삼각경협을 추진하는 것만이 한반도의 통일 과정에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논리도 많이 개발하고 있는 상황이고요. 반면 한국의 인식은 러시아 극동 지역에 대한 투자와 협력이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이뤄져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지역이 인구를 포함해 여러 인프라가 희박하고 여러 법적 기반 조건들이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본격적으로 나서기 쉽지 않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통일을 위한 한·러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맞기 위해선 이러한 양국의 인식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여 전략을 구상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정남
북한의 붕괴와 관련된 통일 과정에 대해 주변국의 인식차가 있습니다만 중국의 시각을 보면 현재의 조건 아래에서는 북한의 붕괴가 중국의 국가이익에 반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최근 중국 내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이러한 요인이 반드시 중국에게 불리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현재처럼 한·미동맹이 견고하고 한·미·일 삼각안보체제를 통해 중국과 대립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북한의 붕괴가 자국 이익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중국은 미·중관계의 전략적인 이익의 틀 안에서 한반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특히 시진핑 체제의 등장 이후 중국은 대미관계에 있어 과거의 수동적인 위치를 벗어나 전략적 경쟁과 협력이라는, 이른바 ‘신형대국관계’를 내세우며 접근하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통일 이후의 한반도가 자국에 어떤 전략적 이익이 될 것인가에 대해 깊은 고려를 하고 있고, 이에 대한 기본적 시각은 바로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서 중국에 압력으로 다가올 수 있는 통일의 모습은 분명히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미국이 한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북한의 급작스런 붕괴나 한반도 통일은 이롭지 않다고 보는 것이죠.
최근 정부의 대중 외교와 관련해선 여지껏 한·중관계에서 역사적으로 이 정도로 발전한 예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은 우리의 통일 추진 과정에서도 상당히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이명박 정부 당시 한·중 전문가위원회에서 한·중관계 발전에 대한 논의에 참석했었는데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의제 테이블에 통일 문제가 올라가는 것을 상당히 꺼려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중 정상 간에도 통일 문제를 여러 차례 논의할 정도로 상황이 많이 변했습니다. 그만큼 한·중 간의 관계가 긴밀해진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를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여전히 과제는 남아있습니다. 어떠한 방향과 방식으로 통일이 될 것인가에 대해선 여전히 한·중 간에 뚜렷한 합의가 없다는 것이죠. 향후 대중 통일외교 측면에서 우리의 통일에 대한 비전을 선제적으로 제시하고 중국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보다 적극적인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미·중 사이 한국의 통일외교 방향?
“한반도 중심적 시각 벗어나 글로벌 차원 미국 전략 살펴야” “중국의 동북아 ‘신균형 전략’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김천식
통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반도 주변국에 대한 외교 방향에 대해 한국이 먼저 통일비전을 굳건히 세우고 주변국 이해를 조정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지, 소극적 대응을 해나가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다음으로 동북아 국제질서 재편 과정의 의의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지하듯 중국의 부상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과 이에 대한 미국의 소위 재균형 전략이 가시화 되고 있는데 이런 움직임이 한국의 통일외교 추진 과정에 어떠한 시사점을 가지는지 분석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황지환
한국으로서는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우선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을 면밀히 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중국의 부상이라는 현상이고 이에 대한 적극적 전략으로 동아시아에서 재균형 전략을 추진하고 있죠. 사실 거시적으로 보면 미국의 동아시아 재균형 전략은 동아시아 지역보다는 미국의 글로벌 전략 안에서 발현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통일을 이야기 할 때는 한반도 중심적으로 논의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미국의 전략에 대한 배경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인식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죠. 우리는 미·중 간 협력과 갈등 속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중심으로 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미국은 글로벌 수준에서 중국의 부상에 대한 대응 전략의 과정으로 한반도를 보고 있기 때문에 그 둘 사이의 인식 격차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이 우리의 통일외교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고려해야 할 부분이 될 것입니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은 당연히 자국 중심의 리더십을 유지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가운데 굳건한 한·미동맹을 토대로 한·미관계의 발전에 의해 한반도의 통일이 이뤄지고 동북아 질서를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부상에 대해 대응하는 방식을 면밀히 살피고 그 사이에서 최대한의 실리를 확보할 수 있는 한국의 외교 정책 공간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한·미동맹과 한·중관계를 조화롭게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미·중 사이의 양단을 설득해 나가며 세심한 외교를 펼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최근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한·중 정상회담을 가졌고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한 이후 전개되는 국면에 대해 미국의 관심이 높습니다. 10월에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부분에 대한 질문이 많이 나올 것으로 전망합니다. 사실 공식적으로 미국은 이 부분에 대해 주권국가가 알아서 결정할 일이라며 한국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이는 분명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거든요. 전승절 참석자들의 지위에 대한 부분도 미국의 동맹국 중 유일하게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참석했다는 것에 대해 미국 정가에서 불만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고요. 물론 정부가 이런 부분에 대해 미국에 충분한 설명과 이해를 구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미·중 양단 사이에서 한국의 외교적 방향에 대한 전략적 고민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정남
여전히 우리에게 있어 한·미동맹은 중요한 부분입니다. 물론 중국이 현재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사실 아직 중국이 어떤 국가로 부상할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이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시장과 민주주의 같은 개념들을 통해서 주변국들과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가지고 공존해 가는데 중국은 커지는 힘에 비해 아시아를 어디로 이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공감대가 없는 상황이죠. 따라서 여전히 우리의 외교에서 미국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기로 결정했을 때 중국의 전문가들은 “단순히 새로운 동반자가 참석하는 수준이 아니라 ‘전략적 의미를 가진’ 동반자의 참석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진핑이 등장한 이후 한반도 외교 기조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과거 중국은 북·중관계를 중심축으로 놓고 한·중관계를 가지고 균형을 이루는 구상을 해왔는데 시진핑 체제에서는 한반도 전체에 대한 영향력 강화와 이를 통해 미국의 한반도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구상, 즉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 측면에서 한반도 전략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중국의 일부 학자들은 소위 ‘신균형 전략’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까지 끌어들임으로써, 한반도에서의 미국을 위시한 한·미·일 삼각안보협력체제의 영향력을 축소시킨다는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중국의 구상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 될 것입니다. 이번 대통령의 방중에서 중국이 북한의 각종 도발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압력과 관련한 내용이 나왔고 정부의 통일 구상에 대해서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으며 한·중·일 관계 강화에 대한 적극적 협조 의지를 표명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문제는 이런 성과들이 축적되어서 한·미관계 강화로 연결이 되면 좋은데 미국이 이를 편안한 눈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 극복해야 할 과제가 될 것입니다.
김천식
다가오는 10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어떠한 논의가 주로 다뤄질 것으로 전망하십니까?
황지환
북한 문제가 이슈로 부상할 것이고 그 중에서도 핵과 미사일에 관련한 논의가 이뤄지겠죠.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0년 기념일에 북한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에 대한 부분이 주요 논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지난 9월 2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에 대한 논의가 있었기 때문에 관심이 가는 부분이긴 하지만 현재까지 미국은 북핵과 관련하여 전략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논의가 될 것인지에 대해선 불투명합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최근에 이란 핵협상이 타결된 가운데 후속작업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라 새로운 회담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죠. 반면 지난해 유엔의 북한인권보고서 발표 이후로 미국 내 여론에서 북한인권 관련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가 다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난해 말 소니픽쳐스사 해킹 사건 이후의 사이버 안보 문제도 이슈로 다뤄질 것으로 봅니다. 또한 지난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중·일 정상회담 추진에 대한 합의가 나온 상태이기 때문에 한·미 정상회담 개최 이후 한 달 안으로 한·중·일 정상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한·일관계 발전에 대한 부분과 함께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부분에 대한 협의가 있을 것입니다.
한·일관계 어떻게 나아가야?
“역사와 안보 분리해야 … 컨트롤타워 간 소통 창구 긴요”
김천식
올해 한·일 국교정상화 50년을 맞았습니다만 최근 양국의 관계를 비춰보면 그리 밝은 전망을 내놓을 수 없는 상황으로 생각됩니다. 한국이 지금 상황에서 대일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향후 정책 방향을 추진해 나가야 하는지요?
최희식
우리가 대일 관계 악화에 대한 배경에서 흔히 드는 이유가 바로 일본의 우경화입니다. 여기서 정립하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과연 일본의 우경화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첫 번째로 역사수정주의가 있습니다. 일본이 과거를 부정하는 행위죠.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여기에 더하여 집단적 자위권의 인정과 헌법 개정, 국방력 강화로 불리는 보통국가론까지 포함해 이 모두를 일본의 우경화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보통국가론이라는 것은 사실 미·일동맹 강화 차원에서 나오는 것으로 역사수정주의와 보통국가론을 포함해 일본의 우경화라고 이해하고 비판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하게 되면 이는 한국 외교에 딜레마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일본은 미·일동맹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보통국가를 진행하고 있는데 한국이 이를 비판한다는 인상을 줬을 때 한·일관계 악화가 곧 한·미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 구조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 기본적으로 역사수정주의에 초점을 맞춰 비판해야 하고 보통국가론은 다른 논리로 접근해야 합니다. 우경화 논리로 일본의 보통국가론에 접근했을 때는 우리의 대일 및 대미외교에 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통일을 목표로 거시적인 국가전략 아래 주변국 외교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대일외교를 추진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일본의 우경화를 어떻게 억제할 것인지에 대해 초점을 두고 접근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일외교에서 역사와 안보의 명확한 분리가 필요합니다. 역사수정주의에 대한 비판과 일본의 보통국가론, 미·일동맹 차원에서 보통국가론의 현상에 대한 대응방식이 분리될 필요가 있습니다. 통일외교라는 거시적 전략을 목표로 대일외교를 추진한다면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부분은 지금보다 낮은 순위의 의제로 들어갈 수 있고, 그러면서 약간의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과거의 문제들은 별도의 논의로 다뤄질 수 있는데 이를 한·일관계 의제의 전부로 설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일 간에는 정치적 리더십 사이의 신뢰회복이 중요하고 지금은 양국 모두 정상회담을 통한 문제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청와대와 일본의 수상관저가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청와대 내 국가안보실이 있고 일본의 수상관저에 NSC가 있으니 양자 사이에 소통 창구를 만들어 비록 양국 정상들이 만나지 못하더라도 현안과 관련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할 것입니다.
러시아, 어떻게 활용해야?
“러시아의 대중국 부담감, 전략적으로 이용해야”
김천식
러시아는 유럽에서 막힌 활로를 극동 시베리아를 향한 동진정책으로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최근 행보에 대한 배경과 함께 향후 우리의 통일외교 측면에서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현승수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2년에 내놓았던 구상은 극동 시베리아와 아태 지역에 대한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 속에 한반도 정책이 있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몽골, 일본까지 정책 대상으로 놓고 아태지역의 일원으로서 다자협력을 통해 극동 지역을 개발하려는 전략입니다. 그런데 현재 상황이 러시아에게는 불리한 측면이 있어요. 서방의 경제제재가 지속되면서 예측했던 것보다 경제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국면입니다.
저는 유라시아 지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감소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인구도 부족한 상황이고 특별한 경제적 신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곧 유라시아 지역에서 러시아가 대중관계에 대해 상당한 부담감을 안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로서는 러·중관계의 틈새, 즉 중국에 대한 러시아의 부담감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통일외교 측면에서 대러외교는 러시아와 전폭적인 관계확대를 모색하기에는 난제들이 많은 상황이므로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경제적으로는 러시아의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는 과정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국면에서 우리가 역할을 할 수 있는 범위는 확대될 수 있습니다. 최근 러시아와 북한이 적극적인 관계개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부분에 대해 우리는 러시아의 대북 접근에 대한 필요성을 감지하고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러시아와의 협력고리를 계속 만들어 나가야 함과 동시에 협력할 의지가 있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는 것이 러시아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중국의 북한 인식?
“북한, 전략적 가치 여전히 크지만 무조건 감싸는 존재는 아냐”
김천식
한·중관계가 새로운 차원의 협력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과 비교해 북·중관계는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최근 중국의 대북 인식 및 전략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정남
중국 내에서 북한에 대한 시각의 변화는 우선 중국이 북한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 시각들이 공론의 장으로 올라오고 있다는 겁니다. 또 이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통제하지 않는 상황이죠. 이것만으로도 북한이 중국에게 얼마나 상당한 피로감을 주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과거 중국이 스스로에 대해 개발도상국 수준에서의 위치를 설정하고 있을 때에는 북한이라는 존재가 그리 큰 짐으로 인식되지 않았는데 이제 강대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리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판단할 때는 문제가 다릅니다. 끊임 없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북한을 감싸주고 있다는 이미지, 이로 인해 중국의 소프트 파워 측면에서 받을 타격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온 것이죠.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이익을 취하고자 중국이 북한을 제치고 한국에 중점을 둔 새로운 형태의 한반도 전략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는 점에 대해선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이 중국에 주는 전략적 자산 가치가 여전히 크다는 점이죠. 이는 결국 한·미동맹에 기초한 한국이 통일 이후 중국의 턱밑까지 올라오는 것에 대한 뿌리 깊은 부담감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시진핑이 등장한 이후에도 중국은 여전히 북한에 대한 전략적 자산 가치를 인식하고 있고 따라서 아무런 준비 없이 북한 체제가 붕괴되는 상황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최근의 모습처럼 북·중관계가 과거에 비해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지만 저는 중국이 북한에 주는 신호는 일종의 경고성이라고 봅니다.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김정은 정권의 생존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중국과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분명한 것은 이제 중국이 북한에 대해 어떤 상황이 도래하더라도 반드시 감싸고 있어야 하는 존재로는 생각하지 않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한반도 내에서 한·중, 한·미, 중·미 관계의 여부에 따라 자신들이 북한 문제를 융통성 있게 활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긴 것부터가 중요한 변화라고 봅니다.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추진 제언?
“북한 통해 한·일 경제력 투여하려는 러시아 전략 역이용 해야” “중국 ‘일대일로’ 구상과 연계, 북한의 건설적 역할 방안 고민해야”
김천식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인식은 어떠하며 향후 추진 방향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현승수
한반도 내에서 신뢰문제가 구축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를 벗어나 동북아 차원에서의 평화구상을 고민하였고 그 산물이 바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바퀴가 굴러가지 않으니 큰 바퀴를 굴려보자는 발상이죠.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유라시아의 에너지와 물류, 교통 등을 포괄한 상생의 대규모 경제 프로젝트를 관련국들이 함께 추진해 나가며 평화적 선순환을 만들어 가자는 것인데요. 문제는 일단 우리가 제안하고 있는 유라시아라는 개념이 애매모호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합의가 없는 사안이에요. 러시아는 2015년 1월 발족한 ‘유라시아경제연합’이라는 소위 구소련 통합정책을 추진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고 있는 유라시아는 우리가 말하는 유라시아와 개념적 차이가 있습니다. 러시아의 ‘유라시아경제연합’ 정책을 입안한 학자를 최근 만난 적이 있는데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잘 추진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한국이 말하는 유라시아 개념과 러시아가 말하는 유라시아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이 말하는 유라시아는 동북아, 즉 동부 유라시아를 말하는 개념에 국한되어 있다. 당신들이 말하는 지역에 대한 설정을 명확하게 한 개념으로 프로젝트를 진행시켜야 한다.”고 말했어요.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죠.
또 우리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추진하는 데 있어 러시아가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는데 저는 부족하다고 봅니다. 최근 러시아는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을 딛고 극동 개발에 나서야 하는데 우크라이나 사태로 크림반도를 병합하는 바람에 천문학적 수준의 인프라 개발을 위한 자금이 투입되어야 하는 시기입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와 극동 지역을 동시에 놓고 전략적으로 판단했을 때 현재로선 크림반도를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거든요. 현 상태에서 예산의 상당부분을 크림반도에 쏟아부어야 하는데 극동 지역의 개발이 제대로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선 비관적으로 보는 이유입니다.
러시아가 북한에 접근하는 것은 결국 소련 시대 때 잃어버렸던 전략적 자산을 다시 회수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러시아가 북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은 사실 그리 크지 않습니다. 결국 북한을 끌어들임으로써 한국과 일본의 경제력을 극동 지역으로 투여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과의 협력이 상정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북한과 협력은 러시아에 그리 큰 이득이 없기 때문에 전망도 밝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이러한 상황을 역이용 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이 참여하는 상황에서의 남·북·러 협력에 대한 비전이 중요한 것이지 지금 당장의 북·러관계에서 나오는 일면들은 한국의 안보나 경제에 그다지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지 않습니다.
이정남
중국은 ‘일대일로’라는 대규모 전략적 구상을 갖고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2013년 중앙아시아와 동남아를 순방하며 제시한 새로운 실크로드 구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중국에서 아시아 및 중동을 거쳐 유럽과 아프리카로 이어지는 육·해상 교역로에 도로·철도·항만 등 인프라를 구축해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전략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추진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은 여전히 명확하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을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과 연결시켜서 추진한다면 훨씬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관건은 결국 북한을 어떻게 참여시킬 것이냐 하는 것이 큰 과제로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북한의 국제적 위상과 규범 준수 여부가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죠. 실제로 북한이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 의사를 밝혔을 때 중국은 거부하지 않았습니까. 중국도 AIIB라는 자국 주도의 금융질서를 만들기 위해서 깃발을 내걸고 나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중국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세계적으로 공신력 있는 제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구성 국가가 일정 정도 국제적 규범을 따를 수 있어야 하는데 정보공개 측면에서나 현재 경제적 시스템 측면을 고려해보면 북한은 여전히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하는 것이죠. 한국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한반도 통일과 연결시킬 수 있을 전략적 방향으로 추진해 나가려고 한다면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이 서로 연결되는 지점에서 어떤 식으로 북한을 참여시켜 건설적인 역할을 하게끔 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논의해야 합니다. 이 부분을 한·중관계에서 의제로 삼고 구체적인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논의하는 틀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북핵문제 어디로 가는가?
“한·미와 북 인식차 커져 … 6자회담 재개되도 동력 얻기 힘들어” “러시아, 북핵실험 시 책임 미국에 전가할 가능성 높아” “한·미·일, 미·중, 남북 사이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 해나가야”
김천식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행동하기 위해선 국제규범을 따르는 것이 전제조건이 될 것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죠. 북핵문제, 어떻게 해결되어야 하는지, 지금의 회담틀인 6자회담에 대한 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황지환
가장 어려운 문제입니다. 최근 영변에 핵시설이 재가동되었다는 보도도 있었고 북한의 우라늄 프로그램에 의한 핵물질이 생산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죠. 이것이 장거리 미사일과 연동되면서 위협이 증폭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핵문제에 대해선 이제 전략적 인내 단계를 넘어서 거의 무관심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듯 합니다. 6자회담을 통해서 북핵과 관련한 협상을 다시 시작하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어요. 또한 지금 6자회담이 다시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시기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미국은 당장 이란 핵협상 후속조치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다 목전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잖아요. 내년 대통령 선거 이후 2016년 초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대외정책을 검토해야 할 시간적 여유도 필요할 것이고요. 대략 2년 정도는 미국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시기가 아닙니다.
더구나 6자회담이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한·미와 북한이 원하는 방향에서 서로 간극 차가 매우 커졌다는 것이 더욱 비관적입니다. 북한은 6자회담이 재개되면 이제는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주장하면서 핵군축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할 것이고 이는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미국은 북핵문제를 핵군축이 아닌 비확산에 대한 관점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죠. 핵군축의 영역을 북한에게 허용해주고 이를 6자회담에서 논의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최근의 분위기를 타고 나간다 하더라도 6자회담이 다시 추진되는 동력을 얻는 것은 어려운 상황으로 판단됩니다. 현재로서는 6자회담이라는 채널을 유지해놓는 상태로 당사국 간 당면한 문제들을 협상해 나가면서 상황변화를 위한 기회를 보는 것이 현실적일 것 같습니다.
최희식
6자회담의 본질로 돌아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6자회담에서 합의가 가능했던 부분이 있었잖아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북·미관계 개선, 북·일관계 개선, 대북 경제지원을 포괄적으로 북한의 핵포기와 맞교환 하는 방식으로 ‘행동 대 행동’ 원칙으로 추진하자고 합의된 상황이잖아요. 그렇다면 결국 나아가야 할 방향은 큰 틀에서 합의되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6자회담의 미래가 그렇게 비관적이지만은 않다고 봅니다.
6자회담이 가동되고 있지 않을 때 이 틀을 대체하면서
6자회담 재개로 끌고 갈 수 있는 매커니즘은 세 가지, 즉 한·미·일 정책공조, 미·중 정책 협조, 남북관계 개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미·일 정책공조는 지금의 한·일관계를 토대로는 심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고 미·중 정책 협조 역시 미·중 정상회담에서 논의되고는 있지만 전폭적인 협조 단계도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남북관계 개선 역시 진척되지 않는 상황이고요. 그렇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한국은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한·미·일 정책공조가 적극적으로 가동될 수 있도록 한국이 역할을 할 수 있고 미·중 정책 협조도 지금 한·중관계가 좋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활용해 상당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북관계 개선이야 얼마든지 가능한 부분이죠. 이러한 전략적 유연성과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방향에서 주도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할 시점입니다.
현승수
러시아는 북한 핵에 대해 기본적으로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6자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바라고 있죠. 그런데 미국이나 일본의 입장과는 조금 다릅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회담을 재개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재개하자는 것이고 이는 일정 부분 북한의 입장에 대해 러시아가 대변자 입장을 갖고 있는 듯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러시아가 북한의 핵보유를 찬성한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미묘한 변화는 2~3년 전까지만 해도 유엔을 포함해 다양한 수단을 통해서 북핵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해 왔습니다만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 내 반미주의가 팽배해지면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거든요.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서는 반대하지만 북한이 핵을 개발해 나가는 입장에 대해선 일정 부분 이해를 한다는 식의 논리를 계속 개발하고 있습니다. 반미적 연대를 위한 퍼포먼스로 보이는데요. 만약 북한이 제4차
핵실험을 진행했을 때 러시아의 입장을 보면 당연히 국제적 공조에는 참여하면서도 북핵문제의 책임을 미국에 전가하는 식의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높죠. 이런 부분에 대해 우리의 대응 논리가 개발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의 통일외교 방향?
“전통적 부분의 외교정책 넘어 민간까지 폭넓게 활용해야” “전략적 유연성과 상상력으로 협력적 매커니즘 활용해야” “공공외교로 주변국 국민들의 마음을 살 수 있어야” “거시적 통일 비전 먼저 내걸고 주변국 협력공간 만들어야”
김천식
통일외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현재 한반도 주변 국제정세 흐름 중 가장 중점을 두고 봐야 할 상황은 무엇인지, 아울러 주변국의 협조와 지지를 얻는 가운데 통일을 이룩하기 위함을 목표로 장기적인 안목에서 한국이 추진해야 할 외교정책의 방향과 전략 및 과제는 무엇입니까?
황지환
역시 미·중관계의 양상이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입니다. 양자 사이가 협력인지 갈등인지, 미국이 지속적으로 세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지역질서가 변화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고려가 중요한 부분이 되겠죠. 우리는 미국의 대중정책, 중국의 대미정책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한 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그 속에서 한반도 전략을 구상해야 합니다. 동북아에서 미국의 재균형 전략과 중국의 신형대국관계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과연 이 두 가지 대전략들이 만났을 때 한반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예의주시하며 봐야 할 것입니다.
또한 통일외교가 정상외교를 통해서 추진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최근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공공외교 기법을 활용한 통일외교도 적극적으로 고려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주요 외교정책들이 최근에는 국민들이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 추진되지 못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죠. 한반도 통일에 대해서 미국과 중국을 포함해 주변국 국민들에게 모두 이익이 될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심어주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정부 대 정부’도 중요하지만 각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이나 여론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해 전통적인 부분에서의 외교정책을 넘어서 민간까지 폭넓게 활용하는 수단을 동원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최희식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에서 특히 미·중의 영향력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강력한 요인일 것입니다. 다만 그것에 함몰되어서 전략적 유연성과 상상력을 확보할 수 없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미·중이 맺는 관계로 인한 정책 분석과 전망도 분명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결국 한국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과 구상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작업입니다.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에 대한 의지를 갖고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는 협력적 매커니즘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통일외교에 대한 명확한 구상을 설정해야 할 것입니다.
현승수
종국적으로는 공공외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러시아의 시각에서 보면 대외정책적 측면에서 한반도에 대한 우선순위가 낮기 때문에 우리는 러시아 사람들에 대한 마음을 사는 작업이 필요할 것입니다. 최근 러시아 전문가들의 시각을 들여다보면 마치 냉전적 구도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물론 소련 시절 때 긴밀한 북·러관계 구도의 세계관을 갖고 있던 한국 전문가들이 당위적 입장에서 북한을 두둔하는 시각을 최근 학술적으로 재생산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고요. 또한 그 중 일부는 러시아 정부에 이러한 경향을 가진 제안을 하면서 실제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우리 입장에선 러시아의 신진학자들을 주목하고 관심을 가지며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정남
한반도 통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중관계는 중요한 틀이 될 수 있는데 앞서 말씀드린 바대로 한반도 통일과 관련한 중국의 입장은 명확하게 드러나 있거든요. 문제는 우리가 거시적 통일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단기, 중기,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를 활용하고 접근할 수 있는 역량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의 전략적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어떻게 북한을 이끌고 주변 강국을 설득해 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사회적으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마오쩌둥이 말한 내적갈등과 외적갈등의 관계, 즉 모든 외적갈등은 내적갈등의 해소로부터 풀어가야 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변 4국에 대해 통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설득하고 지지를 얻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통일의 당사자인 남북관계를 잘 풀어나가야 합니다.
한국 주도의 통일이 되면 소위 통일대박론과 연동하여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한국이 G7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중국 내 일부 학자들도 통일한국이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대국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을 하기도 합니다. 통일 이후에 한반도가 일정한 수준의 경제성장을 거치면 비록 G7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지금처럼 단순히 4강 사이에 있는 약소국의 위치는 아닐 수 있겠죠. 동아시아 지역에서 상당한 전략적 힘을 가질 수 있는 위치에 올라갈 수 있고 그렇게 해서 완전히 새롭게 재편되는 동북아 질서에 대한 우려도 중국의 학자들 사이에서는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동아시아 세력전환이 일정 수준으로 이뤄진 이후에 새롭게 재편되는 질서에 대한 부분을 고려하면서 거시적인 청사진 아래에서 통일에 대한 비전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4강을 어떻게 협력을 이끌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우리가 주도하는 통일, 우리가 이끌어내는 통일외교의 모습을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총평 | 김천식
통일외교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분명 여러 문제가 제기될 것입니다. 본질적인 문제가 될 것인데 한반도의 안보를 확보하는 문제, 영토보존에 관한 문제, 통일한국의 전략적 위상에 대한 문제, 통일한국이 중립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 등이 수면 위로 올라 올 것입니다. 대단히 복잡한 문제지만 우리 민족의 미래와 관련해선 또한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한반도 문제의 국제적 성격을 중심에 두고 주변 형세를 면밀히 파악하여 향후 통일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주변 4국에 대한 외교적 방향을 주도적으로 설정하기 위한 과제들을 살펴봤습니다. 결국 우리 스스로가 어떻게 통일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을 적극적으로 정하고 이에 대한 노력을 경주해 나가면서 주변국들을 설득해야지, 우리의 방향은 미처 정해놓지 않은 채 주변국들에게 단순히 통일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한반도를 하나의 국가로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 민족이 나서지 않으면 누구도 그걸 이야기해 줄 수 없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우리 스스로 통일을 자주적, 평화적, 민주적으로 하겠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비핵평화국의 비전, 주변국들과 선린관계를 유지해 나가겠다는 비전, 민주주의와 인권을 존중해 나가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통일외교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