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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017.09.18] 北核, 6·25 때 기획된 적화통일用이다

2017.10.24 1350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21일 조선로동당은 중앙위원회를 개최했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후퇴를 거듭하던 북한군이 중국의 도움으로 겨우 한숨 돌리고 있었다. 북·중 국경지대의 피란지에 머물고 있던 김일성은 자강도 만포시 별오리에서 전원회의를 열었다. 전쟁을 평가하고 남침 실패의 원인 8가지를 정리했다. 그 첫째가 강력한 적과 싸우기 위한 예비부대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 ‘별오리 회의’ 결과에 따라 1954년 인민군을 재편성하면서 예비부대 명목으로 ‘핵무기 방위부문’을 설치했다. 휴전 3년 뒤인 1956년 30여 명의 물리학자를 소련의 두브나핵연구소에 파견한 것이 북한 핵 개발 노력의 효시다.

 

핵무기의 가장 큰 특징은 재래식 무기와 비대칭성(asymmetric)이다.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은 현장에서 7만여 명을 살상했다. 어떤 재래식 무기도 핵무기와 경쟁할 수 없다. 1964년 중국의 핵실험에 이어 1974년 인도의 핵실험, 또 1998년 파키스탄의 핵실험은 국경을 인접한 국가의 핵무장이 누구를 겨냥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와 비(非)보유국 간 국경 분쟁의 결말이 어떤지는 자명하다. 지난달 인도와 중국 간의 국경 분쟁은 경비병력 간의 몸싸움과 투석전으로 끝났다. 총격전이 난무하던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국경 분쟁은 1998년 파키스탄의 핵실험 이후 소강상태다. 핵무기의 상호확증파괴(MAD) 덕택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CNN 방송과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 개발은 체제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북핵에 대해 체제안전 보장용이라는 인식이다. 북한의 핵 보유는 체제안전이나 남침용이 중요한 게 아니다. 비무장지대를 두고 군사적으로 대치 중인 대한민국에 치명적인 위협 자체가 중요하다. 북한은 김정일 시대의 핵무기는 ‘체제유지를 위한 자위적 수단’이라고 선전했으나, 김정은 시대에는 ‘적화통일을 위한 최고의 무기’로 입장을 바꿨다. 김정은은 ‘화성-12호’의 전력화를 선언하면서 핵무력 완성의 거의 종착점이라고 선언했다.

 

북한은 태평양으로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15일 “미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손을 떼라”고 재차 주장했다. 지난 6일 핵실험 성공을 자축하는 평양시 군민(軍民)대회에서 오금철 북한군 부총참모장은 “서울을 비롯한 남반부 전역을 단숨에 깔고앉을 수 있는 만반의 결전 준비를 갖출 것”이라고 선언했다. 앞서 지난달 26일에는 김정은이 ‘선군절’을 맞아 백령도와 대연평도를 점령하기 위한 북한군 특수작전부대의 가상훈련 현지지도에 나섰다. 북한의 대량파괴무기(WMD)가 어디를 겨냥하는지 분명하다.

 

북한의 전략은 향후 3단계로 진행될 것이다. 우선, 핵과 미사일의 극단적인 도발로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고, 2단계로 주한미군을 철수시킨다. 종국적으로는 미국의 핵우산 밖으로 던져진 대한민국을 위협해 적화통일의 과정을 밟을 것이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이 한국을 버리도록 유도해 잠재적으로 2차 한국전쟁의 길을 닦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도자의 안보 인식은 국가방위에 중요한 요소다. 2017년 가을은 김일성이 궁지에 몰려 별오리 회의가 개최되던 1950년 겨울과 다르다. 남침 실패를 분석해 재차 공격을 준비하는 평양의 실체를 파악하지 않으면 과거 흥남철수처럼 제2의 미군 함정 ‘빅토리호’를 타고 일본열도로 피신할 수도 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70918010731110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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