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2017.08.01] 대화-제재 병행論은 비현실적이다
2017.10.24 1526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말 한·미 정상회담에서 주장한 코리아 이니셔티브는 집권 이후 7차례의 미사일 발사로 일단 물 건너갔다. 문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운전석에 앉겠다는 베를린 구상 자체는 큰 하자가 없다. 다만 운전은 동일한 방향으로 진행될 때 전진할 수 있다. 현재 취임 2개월 만에 제안한 ‘베를린 구상’이 중대한 기로에 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북한의 7·28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는 동북아 안보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게임체인저(Game changer)다. 문 대통령도 7·29 긴급 국가안보회의 전체회의에서 “동북아 안보 구도에 근본적인 변화의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본토까지 도달하는 ICBM 발사 능력을 심야에 성동격서 전략으로 과시하는 김정은은 동북아 국제정치의 주도권을 흔들고 있다.
다음은 남북 당국 간 회담으로 엄중한 한반도 상황에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김정은의 북한은 김정일의 북한과 질적·양적으로 차이가 있다. 2000년 6·15공동선언과 2007년 10·4공동선언의 추억은 잊어야 한다. 지난 1995년부터 2001년까지 10대 후반을 스위스 베른에서 보내서인지 김정은은 글로벌 감각이 선대와 다르다. 워싱턴 이외에는 관심이 없다. 미사일 발사 이후 조선중앙통신에 등장하는 김정은의 멘트는 미국에 집중돼 있다. 서울은 안중에 없고 가끔 하부단위에서 비난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한국이 끼어들 여지는 애당초 없었다.
미국을 상대로 하려는 김정은에게 남북군사회담에서 비무장지대의 대북확성기를 끄는 정도는 관심 밖이다. 추석 이산가족상봉 제의는 12명의 탈북 여종업원들의 송환 요구로 일축했다. 북한 입장에서 지금은 미국을 밀어붙이는 만조 전략이다. 한국은 미국이 움직이면 세트로 흔들 수 있다고 계산한다. 굳이 남북회담으로 전선을 확대해 초점을 흐트러뜨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향후 한·미 을지프리덤가디언 연합훈련이 시작되면 훈련 중단을 요구하는 역제의를 통해 한국사회의 남남갈등을 유도한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이제 현실을 직시하는 대응책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 레드라인을 넘어서는 북한을 상대로 가능한 모든 정책을 찾아야 한다. 문 대통령의 독자적인 대북 제재 방도를 찾아보라는 지시는 시의적절하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베를린 구상의 동력이 상실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외교안보부처의 공무원들로서는 당황스러운 지시다.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측으로 진행할 것을 언급한 후에 언제든지 좌회전할 준비도 하라는 발언은 공무원들로서는 좌고우면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제재와 대화는 병행할 수 없고 제3의 방도는 없으며 택일할 수밖에 없다.
핵무기와 운반수단인 ICBM의 완성은 안보 위협의 종결자다. 야심 차게 출발한 베를린 구상은 접어두고 레짐체인지까지 주장하는 다양한 방책이 검토돼야 한다. 냉정한 국제정치의 이해도 필요하다. 북한을 감싸는 중국에 기대는 대북제재만으로 문제 해결을 바라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핵무기의 비대칭적 특성을 감안해 ‘공포의 균형’에 기초한 우리의 핵무장도 본격적으로 검토할 수밖에 없다. 안보 대응책에서 금기 영역이 있을 수 없다. 생존을 위한 눈물겨운 투쟁이 시작돼야 한다. 삼복 무더위와 달리 한반도가 북핵과 ICBM으로 안보 빙하기로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통일외교학부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708010107311100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