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화(소장)_[중앙시평] 포용적 성장 제대로 해 보자, 중앙일보, 2018.8.2
2018.11.30 1311
2006년 인도 정부는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을 경제개발의 목표로 공식 발표했다. 당시 경제성장률은 8%가 넘었으나 성장의 과실을 모든 계층이 함께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4년 중국은 ‘화해(和諧) 사회(harmonious society)’를 발전 목표로 제시했다. 덩샤오핑의 개혁 이후 고도성장을 했지만 지역 간, 도시·농촌 간, 계층 간 격차가 커졌고 국민 통합이 중요했다.
경제 성장과 평등한 분배는 어느 국가에서나 중요한 정책 목표다. 이 둘 간의 관계를 분석한 사이먼 쿠즈네츠는 경제성장의 초기 단계에는 소득불평등이 늘어나지만 이후 감소한다는 논문을 1955년에 발표했다. 세계은행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신흥국들이 산업화 과정에서 쿠즈네츠의 예측과 달리 ‘평등과 함께하는 성장(growth with equity)’을 이룬 원인을 분석한 『동아시아의 기적』을 1993년 발간했다. 8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에서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점점 심해졌다. 전체 소득에서 노동자의 몫이 계속 줄었다. 국제무역, 기술발전, 경제·정치·교육 제도가 성장과 분배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가 많이 나왔다.
세계은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같은 국제기구들은 포용적 성장의 중요성을 오래전부터 강조해 왔다. 필자가 근무했던 아시아개발은행(ADB)은 2008년에 아시아의 발전을 위한 목표와 전략을 담은 『전략(Strategy) 2020』보고서를 만들었다. 포용적 성장을 지속 가능한 환경, 역내 경제 통합과 함께 3대 중점 과제로 정했다. 수십 번의 회의를 거쳐 구체적인 실행 전략과 예산을 정하고 성과의 평가기준을 마련했다. 국제기구들은 사회간접자본 투자, 교육·훈련, 보육 지원, 금융, 공공거버넌스 개선, 반부패, 생산적 복지와 같이 성장과 분배에 함께 도움이 되는 정책들을 제시했다. 그러나 국가마다 성장률과 소득 불평등 정도, 재정 여력과 개방도 등 현실 여건에 차이가 있어 정책의 효과는 많이 다를 수 있다.
이종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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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이단(異端)의 경제정책을 1년 넘게 했지만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투자가 위축되고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은 둔화됐다. 소득 분배도 아직 특별한 개선이 없었다. 이제부터 포용적 성장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포용적 성장은 소득주도 성장을 포괄하는 상위 개념”이라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해석을 내놓아 정책 방향이 혼란스럽다. “포용적 성장은 신자유주의의 ‘배타적 성장’과 대비되는 개념”이라는 극단의 견해가 나오고 포용적 성장을 위해 소득 재분배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포용적 성장으로 이름만 바꿔 소득 주도 성장의 잘못된 정책을 계속하고 선심성 복지를 확대하는 일이 벌어질까 걱정이다. 소득 재분배와 복지 확대가 필요하지만 과하면 자본 축적과 기술발전을 저해하고 근로의욕을 감소시켜 경제 성장을 해롭게 한다. 성장을 하지 못하면 포용적 성장을 할 수 없다. 주방장의 실력이 없어 음식 맛이 없고 메뉴도 그저 그런 음식점이 간판만 바꾸고 공짜서비스를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제대로 맛있는 요리를 해 손님이 늘도록 개선해야 한다.
한국 경제는 앞으로 성장 잠재력을 높이고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경제 불평등의 근본 원인을 해소하면서 포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국민 모두가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정부가 필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이제 집권 2년 차 정부가 포용적 성장이라는 새로운 경제정책의 틀을 내세웠으니 과거의 정책들을 재검토해 버릴 것은 버리고 부작용이 적고 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좋은 정책과 제도를 만들며, 경제 부처별로 앞으로 어떤 성과를 내고 평가를 받을지 결정해야 한다.
지금 한국이 당면한 현실은 인도, 중국이나 다른 선진국들과는 많이 다르다. 저출산·고령화, 주력 수출산업의 쇠퇴, 영세 중소기업·서비스업의 낮은 생산성, 청년 실업 등의 구조적 어려움이 겹쳤고 보호무역주의, 미·중 간 갈등 심화, 국제 금융시장 불안정으로 대외 불확실성도 높다. 성장과 분배를 함께 개선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실정에 맞는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해 성과를 내야 한다.
지난 1년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무조건 좌회전하며 과속으로 달리는 자동차와 같아 많은 국민을 불편하게 하고 불안감을 줬다. 이제는 좀 더 안정적인 속도로 달리면서 도로를 잘 보고 방향을 좌로 우로 적절히 바꿔 새 목표를 향해 가야 한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https://news.joins.com/article/22853134
[출처: 중앙일보] [중앙시평] 포용적 성장 제대로 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