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욱(북한연구센터장)_ [칼럼] 세기의 북미 정상회담, 시나리오는, 2018.6.11
2018.12.18 2481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 국제정치의 역학구도를 뒤흔들 수 있는 회담이 목전에 임박해 있다. 정상회담이란 고위험, 고수익의 게임이다. 특히 이질적인 지도자 간의 숨 막히는 포커 게임은 승부를 점치기가 쉽지 않다. 거래의 달인으로 비유되는 비즈니스 대통령과 전용기를 외부에서 임대해야만 하는 가난한 독재국가의 3대 세습 지도자가 대면하는 정상회담이다. 트럼프·김정은의 6·12 싱가포르 회담은 역대 정상회담의 족보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희귀한 사례다.
역설적으로 양 지도자의 접점이 가능한 논리는 ‘통념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회담이 절실한 정상들의 야심(?)을 통해서 ‘부조화 속의 조화’를 찾을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양측의 배후에는 중· 러 및 한·일 양국이 포진한 만큼 다국적 게임이다. 협상의 쟁점은 첫째, 미국이 일괄타결을 요구했다가 한 발 물러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포함한 완전한 체제보장(CVIG)이고, 둘째, 제조된 과거 핵무기, 핵물질의 현재 핵무기, 핵시설의 미래 핵무기와 ICBM의 폐기이며, 셋째, 사찰·검증·이행·보상 비핵화 일정 등이다. 3대 이슈를 중심으로 싱가포르 회담을 조망해보자.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우선 ‘최상의 시나리오’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진정성 있는 비핵화를 결심한 만큼 장밋빛 전망이 가능하다. 양측의 ‘통 큰 양보’에 의한 윈윈(win-win) 게임이다. ‘좋은 협상, 착한 이행’이라는 명제에 부합하는 생산적인 결과를 도출한다. 비핵화 단계를 신고· 사찰· 검증, 미래 및 현재의 핵무기 폐기, 과거에 제조된 핵무기 폐기 등 최장 3단계로 축소해 빅딜이 가능하도록 합의한다. 올해 노벨상은 트럼프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 문재인 대통령 3자에게 돌아간다.
다음은 ‘그럭저럭 버티기 시나리오’다. 양측은 전 세계에서 온 3000여명의 보도진이 숙박비가 아깝지 않을 공동선언문을 발표한다. 나쁘지 않은 합의임에도 싱가포르 회동 이후 워밍업의 3개월이 지나 가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때쯤 이행이 난관에 부딪힌다. 핵무기와 시설의 신고와 사찰 및 검증을 둘러싸고 양측의 이견이 노출되기 시작한다. 국제기구의 사찰 정보와 북한의 고백이 불일치해 양측의 신경전이 전개된다. 국제적인 지지를 받은 합의문이 초반부터 미로에 부딪히기 시작한다. 트럼프의 트위터는 조변석개다. 벌써 2차 정상회담이 불가피하다는 뉴스가 보도된다. 트럼프는 비핵화가 빅딜이 아니라 점진적인 과정이라는 사실을 협상에서 절감한다. 기대는 높았지만 용두사미의 시나리오다. ‘좋은 협상, 악한 이행’의 회담이 초래하는 필연적인 귀결이다.
마지막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다. 양측이 회담장에서 대면했지만 한두 번의 대화로 쟁점이 조율되지 않는다. 남북정상회담처럼 사전에 합의문 조율이 50%도 완료되지 않아 공동선언문 작성에 어려움이 많다. 양측은 협상 테이블에서 미국은 CVID, 북한은 단계적, 동시적 비핵화와 체제보장이라는 문장을 반복하면서 담판에 주력한다. 이행 날짜를 구체적으로 명기하는 데 대한 평양의 거부감이 심하다. 1박2일의 회담에도 진전은 없다. 양측은 추가적인 논의를 계속한다는 미봉책 수준의 합의문을 발표하고 각자 회담장을 출발한다. 향후 2차· 3차 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한 게 성과라면 그나마 성과다. 취재진들은 모호한 결과를 해석하느라 혼선을 빚는다. 최상의 시나리오를 기대하지만 실제 포커 게임이라면 ‘그럭저럭 시나리오’에 돈을 걸고 싶다.
북·미 비핵화 회담은 시작이 반이 아니다. 뉴욕 양키스 야구팀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의 명언을 기억해야 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9회 말 스리 아웃이 돼야 게임이 끝난다. 매회 사찰과 검증 및 폐기가 착착 진행돼도 9회까지 갈 길이 멀다. 전 세계 수십억명의 시청자가 세기의 경기를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명승부를 기대한다.
[출처] - 세계일보
[원본링크] - http://www.segye.com/newsView/20180610003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