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0. 8. 31] [동아광장/이내영] 등 돌린 민심에 낙마한 후보들
2010.08.31 3515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진 도덕성 논란으로 김태호 총리 후보와 신재민, 이재훈 장관 후보가 자진 사퇴하게 되면서 이명박 정부의 집권 후반기 내각 구성이 지연되고 국정운영의 주도권에서도 큰 타격을 입었다. 2000년에 인사청문회가 시작된 이래 총리 후보와 장관 후보 두 명이 한꺼번에 낙마한 것은 처음 있는 사태이다. 특히 김 총리 후보는 젊고 참신한 이미지를 가진 8·8 개각의 상징적 인물이자 잠재적 대권주자의 한 명으로 여겨졌기에 김 총리 카드를 살리려는 청와대의 의지가 강했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이 끝내 김 총리를 낙마시키는 결단을 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로 추측된다. 우선 청문회 과정에서 나타난 다양한 도덕적 결함과 의혹, 특히 박연차 사건과 관련한 말 바꾸기 등으로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부정적 평가가 커졌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이유는 김 총리 후보에 대한 국민여론이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이를 무시하고 임명을 감행할 때 예상되는 민심 이반을 우려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동아시아연구원이 2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태호 총리 후보에 대한 평가가 청문회를 거치면서 급속히 악화되어 김 후보가 총리로서 ‘적절하다’는 응답은 19.9%에 불과한 반면, ‘부적절하다’는 응답은 66.0%에 달했다. 대통령 지지율도 청문회 초기인 21일에는 48.7%였으나, 청문회 종료 직후인 28일에는 43.7%로 크게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늦게라도 잘못된 인사 거둬 다행
총리 후보와 두 장관 후보의 낙마가 향후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우선 정부여당으로서는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 후보와 두 장관 후보의 낙마로 MB정부의 집권 후반기 국정구상이 처음부터 흔들리는 치명상을 당했다. 또한 새 총리와 장관 후보들을 찾아서 인사검증을 통과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국정공백이 불가피할 것이다. 반면 야당으로서는 거대 여당을 상대로 대통령의 인사권을 견제하는 큰 정치적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성과에 고무된 야당이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 등의 추가 사퇴를 압박할 것이고 가을 국정감사 등에서도 대여 공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보면 김 총리 후보와 장관 후보들의 자진 사퇴로 향후 국정운영에서 정부여당의 정치적 부담이 줄어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만약 정부여당이 야당의 반대와 부정적인 국민여론을 무시하고 김 총리와 두 장관 임명을 감행했다면 야당의 비판은 물론 민심의 이반을 초래해 하반기 국정운영에서 큰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 경우 이명박 정부는 전반기처럼 독선적 국정운영과 소통부재의 정치를 지속한다는 비판에 직면했을 것이 틀림없다. 더불어 8·15 경축사에서 이 대통령이 집권후반기 국정운영의 핵심 기조로 친서민·공정사회론을 제시했던 상황에서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등의 도덕적 결함을 가진 총리와 장관 후보의 임명을 감행했다면 8·15 국정구상의 정당성은 크게 훼손되었을 것이다.
또한 한나라당에는 차기 총선에서 큰 정치적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도덕적 결함이 없는 후보를 추천하는 것이 최선이었겠지만 늦게라도 잘못된 인사를 인정하고 총리와 장관 후보들을 포기한 것은 현명한 결정으로 보인다.
정부로서는 이번 낙마 사태로 인한 정치적 타격과 국정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이른 시일 내에 새 총리와 장관 후보에 대한 인사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번 낙마사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인사청문회에서 삶의 이력과 사생활이 낱낱이 드러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결국 낙마해서 명예에 금이 간 후보도 따지고 보면 불완전한 인사검증시스템의 피해자들이다. 후보에 대한 철저한 사전 인사검증이 이루어졌다면 후보자나 정부여당 모두 현재의 곤혹스러운 상황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20일 검증’ 턱없이 짧은 기간
장기적으로는 인사청문회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만큼 여당과 야당이 머리를 맞대고 인사청문회에 대한 대폭적인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우선 20일간의 현행 법정기간은 철저한 인사검증을 위해서는 너무 짧으므로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 또한 후보자의 업무능력과 적합성보다 도덕성 검증에만 치중하는 폐단을 피하기 위해서는 청문절차를 서류를 중심으로 하는 예비심사와 청문회 심사로 이원화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증인으로 채택되고도 불출석하거나 자료 제출을 거부한 경우 이에 대한 실효성 있는 처벌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아세아문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