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0. 10. 26] [동아광장/이내영] 시진핑과 김정은: 두 후계자 이야기
2010.10.26 3726
내가 아는 중국학자는 1980년대 말에 북한에서 유학했고 1990년도 중반에 남한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얼마 전 중국에서 만난 그는 평양 유학시절에 중국과 북한의 생활수준이 비슷했는데 2000년대 이후 북한 방문 때마다 생활수준의 격차가 날로 커짐을 경험했다고 토로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중국과 경제적으로 가장 폐쇄적이고 파탄에 빠진 북한이 20여 년 전에는 비슷한 생활수준이었다는 사실과, 이렇게 큰 격차가 생긴 것은 두 나라 지도자의 상반된 정책선택 때문임을 새삼 깨닫게 됐다.
공교롭게도 최근 한 달 사이에 북한과 중국을 이끌어갈 최고지도자에 대한 후계 승계가 가시화됐다. 9월 28일 북한의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의 3남인 김정은이 대장 호칭을 부여받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직위를 차지하여 후계자로 공식화됐다. 중국 공산당도 이달 15∼18일 베이징에서 열린 17기 당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에서 시진핑 국가 부주석을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선출하여 후진타오 주석의 후계자로 사실상 확정지었다.
중국과 북한의 새 후계자가 등장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떠오른 질문은 두 후계체제 아래서 지난 20여 년 동안 벌어졌던 중국과 북한의 경제적 격차가 더욱 벌어질까, 아니면 줄어들까이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중국과 북한의 격차는 줄어들기보다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정당성-준비과정 천양지차
우선 정당성과 권력기반에서 차이가 있다. 시진핑이 최고지도자로 선출되는 과정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공산당 내부의 제도화된 절차에 따라 후계체제의 정당성이 높고 엘리트 내부의 지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의 등극은 3대 부자세습이라는 점에서 정당성이 취약하고 북한의 엘리트는 물론 주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또 김정일의 건강 악화 때문에 승계과정이 서둘러 진행됐기에 김정은의 권력기반은 취약하고 김정일이 일찍 사망할 경우 김정은 체제가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둘째, 최고지도자로서의 준비와 자질의 측면에서도 격차가 있다. 시진핑은 57세의 준비되고 검증된 후계자다. 혁명 원로의 자제인 태자당에 속하지만 문화혁명 시기에 하방(下放)되어 고초를 겪었고 명문 칭화대를 졸업한 이후 푸젠 성 저장 성과 상하이 당서기, 정치국 상무위원을 지내면서 당과 정부에서 골고루 경험과 실력을 쌓고 지도자로 인정받았다. 김정은은 27세의 청년으로 준비되지 않은 후계자이다. 김정일의 아들이라는 점 이외에는 당과 정부에서 일한 경험이 전무해 최고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검증받지 못했다. 악화된 경제상황 아래 북한 엘리트를 장악하고 국민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국정운영에서도 차이가 예상된다. 중국은 집단지도체제로 운영하므로 개인의 성향에 따라 국정운영이 큰 변화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시진핑 체제의 국정운영 방향을 전망하는 데 주목할 요인이 시진핑을 후계자로 선정한 중국의 17기 5중전회에서 제시한 12차 국가경제와 사회발전 5개년 규획이다. 경제발전 전략을 양적 성장에서 분배와 사회복지를 중시하는 쪽으로 전환하는 내용이다. 시진핑 체제는 중국식 발전전략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사회갈등과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균형발전을 추구하고 이 과정에서 중국 인민의 생활수준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리라 전망된다.
반면 북한 김정은 후계체제가 어떤 노선과 정책을 선호할지는 뚜렷하지 않지만 세습권력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또 권력기반이 취약한 김정은 세력이 군부의 지지를 얻기 위해 선군정책을 지속하고, 개혁·개방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김정은 체제 아래서 파탄상태에 이른 북한 경제의 회복과 곤궁에 빠진 북한주민의 생활이 나아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北주민의 생활은 나아질까
국민의 직접 참여를 통해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민주주의 국가와 달리 중국과 북한체제는 최고지도자의 선정에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절차가 없다는 한계를 가진다. 그럼에도 최고지도자의 자질과 정책선택이 국민의 삶의 질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는 두 나라도 예외가 아니며 오히려 더 결정적이라 할 수 있다.
정황을 살펴보면 지난 20여 년간 벌어진 중국과 북한의 생활수준 격차는 시진핑과 김정은 두 후계체제에서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예상이 빗나가기를 기대하지만, 그러자면 김정은과 후견세력이 군부 강경파의 압력에 맞서 선군정책과 핵개발 야심을 포기하고 중국식 개혁개방 노선으로의 대전환을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 김정은 체제가 노선 전환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지 않기에 중국과 북한의 후계 승계과정을 지켜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아세아문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