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2012. 1. 20] [정치 : 이것만은 고쳐라! 한국정치 ] “인적·정책쇄신도 중요하지만 ‘정치구조 쇄신’이 더 절실”
2012.01.26 3589
<이것만은 고쳐라! 한국정치> “인적·정책쇄신도 중요하지만 ‘정치구조 쇄신’이 더 절실” |
<10> 대담(끝) |
김세동기자 sdgim@munhwa.com |
▲ 김형준(오른쪽) 명지대 교수와 이내영 고려대 교수가 서울 중구 충정로 1가 문화일보 회의실에서 ‘한국정치의 부조리와 개혁방향’을 주제로 대담을 하고 있다.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의 ‘2008년 전당대회(전대) 때 박희태 국회의장 측으로부터 300만원 돈봉투를 전달받았다’는 폭로로 사상 처음 국회의장 비서실이 검찰의 압수 수색을 받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 여야는 뒤늦게 ‘검은 돈’이란 악순환 고리를 끊자며 중앙당 및 당 대표제 폐지 등을 사후약방문처럼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회의원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자는 취지의 국민참여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 도입주장도 나오고 있다. 문화일보는 돈봉투 한국정치의 부조리와 이에 대한 개혁방향을 김형준(55·정치학) 명지대 교수와 이내영(54·정치학) 고려대 교수의 대담을 통해 주제별로 들어봤다. 두 교수의 대담은 지난 17일 문화일보 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
김형준 명지대 교수
사회 = 김세동 차장(정치부)
◆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의 원인
▲김형준(이하 김) = 우리나라 정당이 갖고 있는 뒤틀리고 왜곡된 구조가 가장 큰 문제다. 우리나라 정당들은 1963년 공화당을 만든 ‘김종필 모델’에서 비롯됐다는 말을 많이 한다. 중앙당 사무처 중심 운영체제는 결국 당의 실력자, 대표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당 대표는 크게 3가지의 핵심적 권한, 공천권·당직임명권·국회직 임명권을 갖고 있다. 이외 당론결정권도 갖는다. 엄청난 권한이 당 대표에게 집중돼 있으니 대표에 당선되기 위한 엄청난 경쟁이 벌어진다. 대표를 뽑는 선거인단 수가 매우 적었고 대의원은 의원이나 지구당위원장(현 당협위원장 또는 지역위원장)이 완벽하게 장악했다. 대표가 되려면 의원이나 지구당위원장에게 돈봉투를 돌려야 하는 구조였다. 중앙당과 당 대표제가 폐지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내영(이하 이) = 중앙당 폐지나 당 대표 폐지가 미국식 원내정당화, 정당의 경량화라고 하는 건데, 분명히 돈 드는 정치에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중앙당 폐지, 당 대표 폐지를 하는 게 정당 조직이나 정당 규율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 한국 정치는 돈이 많이 드는 것도 문제지만, 정당체제가 허약한 것도 문제다. 모든 정치개혁의 목표를 정당의 경량화로만 간다면 안그래도 허약한 정당구조가 더 취약해질 수 있다. 중앙당과 당 대표까지 없으면 정당이 제대로 작동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당 대표나 중앙당을 유지하면서 돈정치가 작동하지 않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 중앙당 폐지·당 대표제 폐지 논란
▲김 =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의 원인은 대통령제를 채택하면서도 내각제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집권여당은 항상 정부를 옹호하고 야당은 정부에 반대한다. 의회의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면 대통령제가 작동될 수 없다. 중앙당이 비대해지면서 모든 의원들의 자율성, 책임성을 망가뜨리고 있다. 중앙당이 존재하는 이상 국회는 작동할 수 없게 돼 있다. 여당은 대통령이 지명하는 대표가 청와대나 정부와 정책을 조율한다. 허약한 정당체제가 문제라고 하는데 정당에 무슨 규율이 필요하나. 강제적 당론이 있으면 국회는 항상 파행으로 갈 수밖에 없다. 여야 간에 대화와 타협이 있을 수 없다. 이런 파행적 구조를 막기 위해선 원내정당체제로 가야 한다.
▲이 = 우리의 모델이 유럽식 대중정당이 아니란 면에도, 당론정치를 없애야 한다는 것에도 다 동의한다. 그러나 미국식 원내정당화로 가서 중앙당 폐지하고 당 대표도 필요없고, 그렇게 가는 것이 바람직하느냐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당 대표 없애고 중앙당 없앴을 때 정당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중앙당 폐지는 시간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김 = 정당개혁의 역사를 보면 항상 인적쇄신과 정책쇄신에서 맴돌았다. 지금 한나라당 비대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쇄신의 최고봉은 구조쇄신이다. 그걸 고치지 않으면 곁가지만 건드리는 것이다. 구조쇄신을 안 하기 때문에 4년마다 물갈이가 되풀이돼도 발전이 전혀 없다.
◆ 완전국민참여경선제의 득과 실
▲김 = 지금 여야가 모두 완전국민참여경선제를 얘기하는데, 그건 중앙당이 필요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앙당은 당론 결정과 공천권 중심으로 움직이는 조직인데, 공천권을 국민에게 넘겨주면 중앙당이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다. 집권당은 당 대표의 힘이 막강하고 대통령은 정당을 통해 국회를 지배하려다 보니 당 대표를 자기와 맞는 사람으로 선택했다.
▲이 = 많은 부분 동의하지만 당 대표를 폐지하고, 원내정당화를 하면 지금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나.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대통령제가 있는 한 당 대표가 없어지고 중앙당이 없어져도 대통령을 만들기 위한 파벌이 만들어진다. 독일 같은 곳에서는 미국보다 강한 중앙당·지구당이 있고 당 대표가 있어도 우리 같은 그런 문제가 안 나타난다. 돈봉투나 당론정치가 중앙당이나 당 대표를 없애면 자동적으로 없어지는지는 면밀하게 볼 필요가 있다. 구조와 리더십의 문제, 대통령이라고 하는 최고권력을 위한 경쟁구도 이런 것들이 중첩돼 만들어진 현상을 같이 봐야 한다. 중앙당과 당 대표를 없앴을 때 한국 정당이나 국회가 어떤 모습을 보일까. 미국식이 한국에 그대로 나타날까. 아닐 수 있다. 중앙당을 다 없애고 소속 의원들이 다 개별적으로 활동을 하고 공천도 100% 국민경선으로 하는 게 정말 좋은 것인가. 이런 정치가 긍정적일까. 정당은 비전과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권력장악을 위해 모인 조직인데, 모든 걸 의원 각자에게 맡기고, 공천권도 다 국민에게 줘 버리면 정당정치가 설 땅이 있을까.
▲김 = 당원이 주인되는 게 원론적으로 맞다. 그러나 지구당에 내려가보면 그 당원은 당원협의회장이나 현역의원과 관계된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 불과하다. 당원들의 혜택을 자꾸 뺏으면 누가 당원을 하겠나 하지만 현재와 같은 체제에선 그 의미는 그렇게 강하지 않다. 국민이 공천에 참여하는 건 대세다. 얼마나 부작용을 줄이냐의 문제일 뿐이다. 당원중심으로 가자, 혹은 여론조사로만 하자 이런 단계를 넘었다.
▲이 = 국민참여를 하면 당 대표가 공천권을 가지고 계파 나눠먹기 하는 밀실공천을 없애는 좋은 효과가 있다. 단점은 현역의원에게 유리해서 정당이 참신한 인물을 전략적으로 공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나의 비전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집단이라면 전략 공천도 있어야 한다. 또 국민참여를 늘리자는 것엔 동의하지만 100% 국민참여로 가지 말고 당원과 일반국민을 균형 있게 섞어야 한다.
◆ 여야 2030세대 공천 경쟁
▲김 = 여야 정당의 모든 쇄신이 투박하고 거칠고 가볍다. 특히 한나라당이 2030세대를 많이 공천하겠다는데 그 사람들이 과연 본선 경쟁력이 있겠나. 민주당도 연령을 기준으로 청년층을 비례대표에 공천한다는데 전세계 어떤 나라에서 연령을 기준으로 공천하는 데가 있나. 한마디로 코미디다. 청년들이 정치적으로 훈련이 거의 안 돼 있는데, 별안간 국회에 집어넣는다면 어떻게 되겠나. 신선하다고 잘될 거란 보장은 없다.
◆ 정당정치 개혁
▲이 = 미국은 양당제가 오래됐으니 정당이 느슨해도 되지만, 우리는 계속 이합집산하는 구조에서 느슨한 지지자 중심 정당으로 갔을 때 정당정치가 어떻게 될까. 국회의원들도 총선을 앞두고 분위기가 안 좋으면 다른 정당으로 다 가버리는, 그런 게 나오지 않을까 싶다.
▲김 = 원외중심 정당, 당 대표 체제의 존속이 정당 간 이합집산의 핵심이다. 정당간 이합집산은 당 대표 중심으로 이뤄진다. 우리가 기존의 중앙당 체제를 버릴 때 어떠한 정치적 효과가 올지는 단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지금 구조에선 지도자가 아무리 리더십을 발휘하고 새 인물을 영입해도 결국은 뒤틀린 정치구조에 적응해야 하니까 악순환이 계속된다. 우리 국회의원들이 정당에 들어가기 전에는 얼마나 인정받던 사람들인가. 단기적으로 일부 부작용이 우려돼도 정당구조를 허물어뜨리고 새롭게 올려야 한다.
▲이 = 구조개혁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쇄신을 적당히 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중앙당이나 당 대표 때문이 아니라 정치가 본래 진영의 논리를 가지고 있고, 여야가 지지자가 다르고 가치와 비전이 다르기 때문에 정책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정당의 대결구도가 권위주의 시대보다 더 극렬하다는 데 있다. 그러다보니 생산적 정치가 안 되고 국민이 정당을 불신하는 것이다. 저도 중앙당을 그냥 두자는 건 아니다. 다만 중앙당의 권한이나 내용을 고민하자는 것이다. 공천권이 제도화되면 당 대표가 장악하고 혼자하는 건 해결이 된다.
정리 = 김하나기자 hana@munhwa.com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1957년생 ▲한국외국어대. 미국 아이오와대 정치학 박사 ▲한국선거학회장 ▲경제정의실천연합 정치개혁위원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958년생 ▲고려대. 미국 위스콘신대 정치학 박사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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