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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2. 5. 1] [전문가 좌담] "중국, 베일 벗는 권력투쟁”

2012.05.31 12864

[중국, 베일 벗는 권력투쟁](5) 전문가 좌담

 

“20년간 계속된 상층부 엘리트의 안정구조가 깨진 것”

 

올가을 10년 만의 권력 교체를 앞두고 있는 중국 공산당이 보시라이(薄熙來·63) 충칭(重慶) 서기 실각으로 커다란 격변을 겪고 있다. 보시라이 사건은 단순한 계파간 자리 다툼 차원을 넘어서 중국 정치사에 큰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향후 중국 정치제도 개혁을 위한 기폭제로 작용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1일 중국 전문가들과 함께 ‘보시라이 사건의 의미와 중국 공산당의 미래’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이문기 세종대 중국통상학과 교수, 이정남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 이홍규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박사가 참석했다. 이날 좌담은 경향신문사 6층 인터뷰실에서 홍인표 국제부장이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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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이홍규 박사,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이정남 교수, 세종대 중국통상학과 이문기 교수(왼쪽부터)가 1일 ‘중국 보시라이 사건의 의미와 미래’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기에 앞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 이홍규

“충칭모델은 여전히 유효… 보시라이 처리 여부는 미국과의 협상에 달려”

 

- 보시라이 사태가 현재 중국 정치 상황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이문기=중국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최근 20여년 동안 외형적으로는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기층사회는 불안요소가 많았다. 중국 정치사회 구조는 거시적으로는 안정, 미시적으로는 불안정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거시적 안정부분이 크게 흔들렸다. 상층부 엘리트 정치의 균열이 드러난 것이다. 엘리트 정치의 안정구조가 깨졌다는 측면에서 이번 사건을 중요하게 바라봐야 한다.

 

이홍규=중국은 공산당이 건재한 상황에서 부분적 개혁을 이루면서 현재까지 변화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특징들이 서로 뒤섞인 양상을 지속했다. 이 때문에 이 체제가 어떻게 될 것이냐가 지속적인 관심 대상이었다. 보시라이는 이른바 ‘충칭 모델’을 통해 혼합경제체제나 국가주도 성장 형태를 강조했다. 이런 조치들이 중단될 것인지, 중단된다면 서구와 비슷한 모델로 갈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것인지가 관심사다.

 

이정남=중국의 당면과제는 지난 30년 동안 개혁·개방정책의 성과를 토대로 한단계 도약하는 것이다. 엘리트 균열 없이 통합을 이루면서 말이다. 시민사회가 분노를 터뜨리더라도 엘리트 집단이 견고하면 별 문제가 안된다. 중국이 엘리트 집단 안정을 토대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주요 2개국)로 발돋움하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이 터졌다.

 

- 보시라이 개인 성향이 이번 사태 발생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나.

 

이정남=보시라이는 2007년 말 상무부장으로 있다가 충칭으로 밀려서 갔다. 그래서 중앙으로 진출하려고 실적을 올리려다 보니 나온 것이 ‘충칭모델’이다. 이것이 신좌파들의 생각과 맞아떨어져서 지식인들이 모여들었다. 보시라이는 실적을 과시하려고 외국 언론을 동원했고 대중들도 같이 따라가다보니 핵이 형성됐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지도부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이홍규=보시라이를 정치국 상무위원 9명 가운데 6명만 지지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2008~2010년까지 상무위원 전원이 보시라이 개혁을 지지했다고 할 수 있다. 보시라이도 중앙에 진출하기 위해서 충칭모델과 문화혁명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자 이를 의식해 제2의 문화혁명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렇게 국면을 조정하던 상황에서 왕리쥔 당시 충칭 부시장의 미국 망명 시도 사건이 터졌다.

 

- 왕리쥔 사건이 터지지 않았더라면 보시라이는 차기 공산당 지도부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되고 중앙정법위서기를 맡았을 수도 있지 않나.

 

이정남=2010년부터 중국에서는 제2차 남순강화(南巡講話·1992 덩샤오핑이 중국 남부지방을 돌아보면서 개혁·개방을 강조한 것)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왔다. 보시라이의 충칭모델이 뜨고 신좌파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시기와 비슷했다. 중국 지도부 일각에서는 보시라이를 보면서 너무 나가는 거 아니냐고 우려했다. 이것은 엘리트 정치 내에서 중앙과 지방 관계에서 내부 단결을 해치는 요인이었다. 기존 엘리트 정치의 기본 관행이나 문화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보시라이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거물 정치인인데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사전에 그를 내사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이문기=4월10일 중앙공산당 중앙위원회가 보시라이의 정치국 위원 정직 발표를 하면서 심사숙고해서 합의를 했다는 표현이 나온다. 엘리트 정치 전체에 균열이 갈 수 있으니까 합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파벌 정치로 중국 정치를 해석하는 것은 유용한 분석의 틀이긴 하다. 하지만 현대 정치 과정에서 보면 파벌 정치는 약화되는 추세가 명확하다. 파벌 정치로 중국 정치를 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일 수가 있다. 중국 상층 엘리트 정치가 비밀에 가려져 있으니 그렇게 보이고 설득력 있어 보이는 측면은 있다. 특히 언론이 쓰기는 재미가 있다. 장쩌민 시기를 거치면서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내부적인 합의를 통해 제도화를 이루었다고 본다. 총서기 5년 중임제, 10년 단위 세대교체, 68세 정년 은퇴 제도가 뿌리를 내렸다.

 

▲ 이정남

“공산당엔 위기이자 기회… 정통성 훼손됐지만 새 정책대안 모색 가능”

 

- 이번 사건이 1995년 천시퉁(陳希同) 베이징시 서기와 2006년 천량위(陳良宇) 상하이시 서기를 부패 혐의로 숙청할 때와 어떤 점이 다른가.

 

이정남=천시퉁 서기와 천량위 서기는 진짜 부패 숙청이었다. 이번에는 지도부 전체가 상처를 받으면서 진행되고 있다. 꼭 보시라이만 상처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장쩌민이 군내 파벌을 조성한 혐의로 숙청한 양바이빙(楊白氷) 장군은 중앙군사위 비서장 겸 총정치부 주임 자리에서는 전격 퇴진했지만 그래도 정치국 위원은 유지하면서 임기를 마치고 자연스럽게 물러났다. 그러나 이번은 기존 권력투쟁에서 나온 지도자 숙청하고는 상당히 여러 가지 쟁점에서 차이가 있고, 방식도 차이가 있다. 상처를 입은 정도도 차이가 난다. 공산당 입장에서는 위기를 느낄 정도로 대형사건이다.

 

이홍규=이번에는 공산당 존립에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문화대혁명 당시 일어난 1971년 린뱌오(林彪) 반혁명사건,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당시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 숙청에 비길 만한 사건이다.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당의 정통성에 위기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당내 지도자들 사이에 벌어진 단순한 권력 투쟁이 아니라 한 시대에 대한 어떤 종결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사건 이후 당의 정통성을 훼손한 데 대한 분명한 해답을 지도부가 내놓아야 한다.

 

- 보시라이가 추진하던 ‘충칭모델’의 운명은 어떻게 되나.

 

이홍규=충칭의 개혁조치들이 보시라이 사건으로 사장되지는 않을 것이다. 도시와 농촌 호구(호적) 통합,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농민공(도시에서 일하는 농촌 출신 노동자)이 가지고 있던 농지를 팔도록 하고 농지를 충칭시 당국이 개발하는 방식은 선순환 모델이다. 중국 빈곤지역에도 확대할 수 있다. 당분간은 숨을 죽이겠지만 전국적인 차원에서 다시 논의가 될 것으로 본다.

 

이문기=‘충칭모델’을 평가할 때 크게 두개로 나눠서 봐야 한다. 하나는 내륙에 맞는 개발 모델이라는 점, 그리고 다른 하나는 범죄와의 전쟁, 혁명가요 부르기와 같은 대중운동이다. 후자는 보시라이의 야심이었다. 신좌파 지식인들은 중국 사회의 이념 대립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보시라이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이런 것은 보시라이 실각으로 끝났다고 본다. 그러나 충칭모델에서 지역발전 모델이라는 정책적 대안은 여전히 유효하다. 중요한 것은 충칭 시민들의 지지가 높았다는 점이다. 지역경제발전과 소득 양극화 해결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단번에 잡아야 하기 때문에 끌고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보시라이는 사라져도 충칭의 특수한 조건에 맞춘 발전 정책, 절반의 충칭모델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 보시라이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 처리될 것으로 보나. 사형을 당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정남=부패 문제로 정치국 위원을 사형시키는 것은 중국 지도부로서는 부담이다.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52) 영국인 사업가 살해를 주도한 혐의를 받기 때문에 사형을 당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이문기=예전처럼 공산당이 모든 정보를 쥐고 있으면 그냥 봉합하고 끝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외부에 알려진 게 많다. 해외에 어마어마한 금액의 송금을 시도하고 후진타오 주석 전화도 도청했다. 이러한 사실을 범죄로 인정하면 사형감이다.

 

이홍규=이번 사건은 해외언론에서 보도를 하고 중국 지도부가 따라가는 형국이었다. 왕리쥔이 청두 미국 총영사관에 들어와 망명을 신청하면서 관련 정보를 모두 미국에 건네주었다고 본다. 모든 정보를 미국이 다 갖고 있다. 미국이 이것을 얼마나 풀어놓을지가 관건이다.

 

▲ 이문기

“엘리트 정치 균열 우려해 보시라이 정직 합의 발표… 파벌정치 해석은 지나쳐”

 

- 보시라이 사건은 앞으로 중국에 위기인가, 아니면 기회인가.

 

이정남=기회이면서도 동시에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기존에 추진했던 정책을 되돌아보면서 정책의 새로운 청사진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기회다. 정통성이 약화된 위기상황에서 출발하는 새 공산당 지도부는 새로운 대안을 통해 대중으로부터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위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공산당의 대중적 지지 약화, 권위약화, 정당성 추락을 꼽을 수 있다.

 

이문기=보시라이와 무관하게 앞으로 등장할 시진핑(習近平·59) 체제는 정치개혁에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3세대 지도부(장쩌민)는 경제발전 성장, 4세대 지도부(후진타오)는 성장과 동시에 사회적 안정과 분배를 강조했다. 5세대(시진핑)는 정치개혁으로 통치의 정당성을 확고히 해야 한다. 보시라이 사건은 정치개혁에 대한 대중적 압력에 대응하고 개혁에 대한 내부 필요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아직 정치체제 개혁에 대한 방향과 확신이 없다. 서구식 다원주의 배격, 극좌적 회귀 거부 정도만 나와 있다. 시진핑 체제는 출범 후 2~3년 지나야, 그러니까 2015년이 되어야 본격적으로 정치개혁 의제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홍규=단기적으로 위기다. 현재 중국이 맞고 있는 사회적 갈등, 빈부격차는 후진타오 체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가뭄에 논에 물대는 식으로 찔끔찔끔 이뤄졌다. 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분배를 강조하던 보시라이가 숙청되면서 인민들의 상처가 남아 있을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눈에 보이는 금융개혁, 국유기업 민간자본 참여와 같은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사회 = 홍인표 국제부장>

 

<시리즈 끝>

 

<오관철 | 베이징 특파원·배문규 기자 okc@kyunghyang.com>

 

원본 위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5012145305&code=97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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