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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9월 HK 워크숍 안내(수정_발표문첨부)

2009.09.16 6535

 

9월 아연 HK 워크숍이 9월 21일에 진행될 예정이오니, HK 선생님들의 참석 부탁드립니다.

 

[9월 아연 HK워크숍]

일시:2009년 9월 21일 오후 3시 30분

장소:아연 대회의실

주제: 1. <근대조약체제 이후 개항장에서 조선인과 중국인의 갈등과 해결방식>

          (발표: 박정현 HK 연구교수, 토론: 이정남 HK 연구교수)

         2. <일제하 선만관계와 ‘선만일여론’> (발표: 송규진 HK 연구교수, 토론: 조철호 HK 연구교수)

 

 

 


 


 


발표주제1:근대조약체제 이후 개항장에서 조선인과 중국인의 갈등과 해결방식

발표자:박정현(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

토론자:이정남(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

 

이 논문은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초국가적 공간인 租界, 2) 조계로 이주한 상인과 상인들의 연결망, 3) 이들 중국 상인이 조선인과 갈등을 일으키고 이것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이것을 통해 조공체제가 붕괴되고 근대 조약체제가 성립된 의미를 살펴볼 것이다.

1) 동아시아의 근대는 불평등 조약으로 시작되었다. 조선도 이러한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청은 이전의 형식적인 종주권을 실질적인 종속관계로 바꾸기 위해 조선을 근대 조약체제로 편입시키는데 적극적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청은 조선에서 다른 열강과 마찬가지로 조계를 설정했다. 조계는 근대 이후 외세가 조선에 침략하면서 자국민의 안전과 통상을 위해 설치했던 전용 거류지였다. 조계는 외국인과 조선인이 교류하는 가장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조계는 근대 이후 만들어진 가장 대표적인 초국가적 공간 가운데 하나이다. 1장에서는 근대 조약체제 성립 이후 조계의 성립과 존재 형태를 살펴볼 것이다.

2) 조선에 이주한 중국인은 물론 압도적으로 산동 출신이 많고, 대부분 상인이다. 청은 열강을 견제하고 조선을 계속 속국으로 묶어 놓기 위해 상업 장려정책을 펼쳤고, 상인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조선으로 이주한 상인들은 상업활동 외에 자신들의 연결망을 구축하여 조선에서 강력한 생존력을 유지했다. 2장에서는 초국가적 공간인 조계에 이주한 중국인의 성격을 살펴볼 것이다.

3) 청 상인의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조선인, 조선상인과 마찰과 대립은 불가피했다. 청 상인은 조선에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청정부의 힘에 의지하여 강압적인 방식을 동원했다. 이러한 청 상인의 행동은 중국인과 조선인 사이에 다양한 형태의 갈등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갈등은 대부분 중국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결되었다. 3장에서는 중국 상인이 조선인 사이에 나타난 갈등과 이것을 해결하는 방식을 살펴볼 것이다.

이 논문은 제도분과 세부과제1의 ‘초국가적 질서의 역사적 유산’이라는 아젠다의 1년차 연구과제인 동북아 전통 질서에서 근대 조약체제로의 전환을 구체화한 것이다.

 

발표주제2:일제하 선만관계와 ‘선만일여론’

발표자:송규진(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

토론자:조철호(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

 

이 논문에서는 동북아 질서의 역사적 맥락과 유산을 고찰하는 제도분과의 세부과제1(동북아 초국가적 질서의 역사적 유산)과 관련이 있는 ‘선만일여론’을 다룰 것이다.

최근 평화와 공존공영의 동아시아를 만들자는 동아시아론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런데 동아시아론에 대해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의심스러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는 역사적 경험에서 기이한 것이다. 일제는 표면적으로 평화와 공존을 내건 초국가적 이데올로기들 양산해 냈다. ‘내선일체론’, ‘선만일여론’, ‘일만일체론’, ‘滿支一如論’, ‘日滿支블록론’, ‘日鮮滿블록론’, ‘동아협동체론’, ‘동아연맹론’, ‘대동아공영권론’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들 초국가적 이데올로기는 일제 주도하의 동북아질서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으며 대부분 식민지인들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일제가 양산한 초국가적 이데올로기 가운데 조선지역이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 것이 ‘내선일체론’과 ‘선만일여론'이다. ‘내선일체론’은 황민화정책과 창씨개명 등에 의해 구체화되면서 조선인에 직접 피해를 주었기 때문에 그동안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에 비해 ‘선만일여론’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이글에서는 ‘선만일여론’이 나오게 된 배경으로 일제가 조선과 만주의 상호관계를 긴밀하게 만들려고 했던 역사과정을 분석하고 ‘선만일여론’이 제기된 이후 그러한 논리가 당시 실제적으로 어떻게 작동되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특히 조선과 만주국은 ‘선만일여론’을 통해 일제정책에 협력했음을 밝히고자 한다.

이 논문은 제도분과 세부과제1의 ‘초국가적 질서의 역사적 유산’이라는 아젠다를 구체화하는 데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사상분과의 연구와, 조선인의 만주이민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사회문화분과의 연구와도 연계성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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