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2013. 9. 29] 매경시평: 한국은행, 시장과 잘 소통중인가?
2014.01.09 1850
경제위기에서 중앙은행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초(超)저금리 상황에서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이자율을 더 이상 낮추지 못하는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과거에는 생각도 못한 '양적완화(QE)'나 '선제적 안내'와 같은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벤 버냉키 미국 연준
총재는 단기이자율을 0%대로 낮추고 지난 5년간 3조달러 이상의 돈을 시중에 풀었다. 지금도 매월 850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사들이고 있다.
그리고 실업률이 6.5% 이하로 낮아질 때까지는 단기금리를 올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유럽 중앙은행의 드라기 총재는 2012년
7월 "유로존 보호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공언하고 무제한으로 국채를 매입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시장을 안정시켰다. 일본은행의 구로다
총재는 취임 이후 2% 물가 상승률을 목표로 매월 7조엔의 채권을 매입하고 있다.
양적완화 정책이 투자자의 신뢰 회복과 시장
안정에 크게 기여하였지만 실물경제에 미친 효과는 확실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다. 구조적인 대책 없이 돈의 힘만으로 경기를 떠받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양적완화가 너무 오래 지속되면서 부채비율이 다시 상승하고 부동산과 금융시장에서 거품이 발생할 우려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젠 중앙은행도 적절한 시점에 풀었던 자금을 회수할 '출구전략'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버냉키는 미국 경기의 회복이 가시화되면서
지난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의에서 "올해 말부터 양적완화 속도를 늦추고 실물지표가 계속 개선되면 내년에는 양적완화를 중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버냉키의 출구전략은 글로벌 시장에 혼란을 주고 있다. 최근 신규 취업자 수가 예상보다 적게 늘고, 재정 긴축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며 경기 회복 자체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도 더불어 커졌다. 지난 19일 연준이 예상과 달리 양적완화 축소를
유보하자 금융시장은 한바탕 혼란을 겪었다.
6월 이후의 사건들은 중앙은행이 시장과 소통하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 준다. 경기지표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정책을 투명하게 운영하기는 어렵다. 시장 참가자들이 과잉반응을 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신뢰성을 지키기 위해
버냉키는 임기가 끝나기 전에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후임자가 누구이든 시장의 혼란 없이 풀린 돈을 회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위기의 한가운데에서 선진국 중앙은행들뿐만 아니라 한국은행도 통화정책의 운영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한국
금융시장이 다른 신흥국들과 비교하여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외국인의 핫머니가 더 들어오는 것은 좋지 않다. 높은 가계 부채와 실물 투자 부진을
겪고 있는 중에 단기 자본들이 한꺼번에 다시 빠져 나갈 때가 걱정이다. 최근 인도, 인도네시아, 터키 등이 겪고 있는 일들을 남의 집 불 보듯이
할 일이 아니다. 3대 경제권의 중앙은행들이 돈줄을 조이기 시작하면 한국만 탈 없이 지나가기 어렵다.
한국은행은 이번 위기에
물가안정에 더하여 금융안정을 새로운 정책 목표로 부여받았다.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하기 위해 어떠한 변화가 필요한지, 위기 대응 능력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위기 때 외환시장과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한 정부 기구들과의 협력체계가 명확하지 않다. 시스템 안정을 위한
거시 건전성 정책의 효과는 아직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
양자
및 다자 간 통화스왑을 비롯한 선진국과 다른 신흥국 중앙은행들 간의 정책공조도 더욱 중요해졌다. 시장이 불안해할수록 정확한 정보와 분석을
기반으로 한 중앙은행의 소통 능력이 더 중요하다. 통화 정책 운용의 방향을 명확히 하고 시장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달래서 같이 갈 수
있도록 정책의 시장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원본링크: http://news.mk.co.kr/newsRead.php?no=911940&year=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