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2017.06.01] 좋은 일자리 제대로 늘리기
2017.10.20 1324
한 여성이 빨랫줄에 널어 놓은 속옷이 없어져 신고하니 다섯 명의 경찰이 달려와 수사를 시작한다. 수퍼마켓에서 맥주를 훔친 도둑을 잡기 위해 경찰들이 1주일간 잠복근무를 한다. ‘문제 학생’을 감시한다는 핑계로 경찰들이 대학 캠퍼스를 배회한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는 “일본 경찰이 사소한 범죄를 찾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은 원래 범죄율이 낮고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치안 유지를 위한 경찰 인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경찰의 수를 계속 늘려서 경찰 한 명당 처리해야 할 일이 부족해졌다. 최근 유엔 통계에 의하면 일본 인구 10만 명당 살인 피해자는 0.3명, 강도 피해자는 2.4명이다. 이는 미국의 4명, 102명보다 훨씬 적은 수치다. 그러나 인구 10만 명당 경찰관 수는 일본이 203명으로 미국 197명보다 많다. 물론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경찰관 비율이 일본보다 높지만 범죄율도 훨씬 높다.
한국은 총기 규제가 엄격하고 강력범죄율이 낮은 세계적으로 안전한 국가다. 인구 10만 명당 살인 피해자는 0.7명, 강도 피해자는 3.2명이다. 그러나 인구 10만 명당 경찰관(해경, 전·의경 제외)은 222명으로 일본, 미국보다 많다. 박근혜 정부는 공공일자리를 늘리고 ‘4대 악’을 근절하겠다며 경찰 채용 인원을 대폭 늘렸다. 그러나 민생범죄는 여전하고 인권침해가 많아졌다는 비판이 있다. 경찰의 처우를 개선하는 한편, 새로운 범죄에 대응하는 능력을 키우고 ‘민중의 지팡이’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해야 한다. 공공서비스의 수요 파악 없이 공무원 수를 늘리기보다 질적 개선이 우선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정책인 ‘J노믹스’는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으로 한다. 공공부문에서 일자리를 먼저 만들어 전체 고용 창출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새 정부는 임기 내에 소방, 경찰, 사회복지, 부사관, 근로감독관 등 안전과 치안, 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 일자리 17만4000개를 늘리고, 공공기관의 직접고용 전환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총 81만 개의 공공부문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공약했다.
청년실업률이 11.2%로 사상 최고이니 일자리 대책은 중요하다. 필요한 공공일자리는 늘려야 한다. 그러나 공공일자리를 늘리면 인건비와 연금을 포함한 장기적인 재정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81만 개’라는 숫자가 나온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공무원을 추가로 채용할 예산 확보도 불확실하다. 부실한 공공기관들이 정규직 인원을 많이 늘리면 미래 재정 부담이 늘어날 것이다.
청년 실업은 공무원 수를 늘려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현재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공시생’은 25만7000명에 달한다. 지난 3월의 1차 경찰공무원(순경) 필기시험에 남자 경찰공무원은 1100명 모집에 3만9140명이 몰려 36대 1, 여성은 121명 모집에 1만4161명이 지원하여 117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공무원 정원을 늘려도 지금보다 더 많은 청년이 시험 준비를 하면 경쟁률은 계속 높고 합격은 여전히 어려울 수 있다. 공시생은 실업자 공식 통계에 포함되지 않아 숫자가 늘면 실업률이 낮아지는 착시현상이 일어난다. 가장 패기가 넘치고 도전정신이 강한 청년들이 생산 활동을 하지 않으면 경제는 후퇴하고, 지금도 좋은 인재를 뽑기 힘든 중소기업은 채용에 더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청년들이 공무원이 되겠다고 몰리는 것은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공공부문 못지않게 직업의 안정성, 복지 혜택, 근로 여건이 좋은 일자리를 경제 전체에 많이 만들어야 한다. 서비스업과 신기술 분야에서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규제 개혁, 중소기업의 생산성과 임금을 높이는 정책, 근로 여건 개선을 유도하고, 능력과 직무에 따라 대우를 하는 노동개혁, 청년들의 기업가 정신을 함양하고 창업을 지원하는 정책, 혁신 중소기업들이 고용을 늘리도록 지원하는 정책들 또한 필요하다. 중앙일보사가 기획한 ‘리셋 코리아’는 청년들이 첫 직장으로 중소기업을 선택할 때의 ‘낙인효과’를 피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인력을 선발해 혁신 중소기업에서 일정 기간 실무 경험을 쌓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청년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창업하고, 중소기업에 가서 경력을 쌓고 싶어 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오랜 시간 노력해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높은 취업 문턱에 고통을 겪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러나 아무리 신성한 목적이라도 경제정책은 비용과 효과를 잘 따져보고 실행해야 한다. 손쉬운 정책은 장기적으로 문제가 많은 조삼모사의 정책이 될 수 있다. 마침 우리 경제가 회복되는 좋은 조짐들이 보인다. 새 정부가 당장 숫자로 나타나는 성과에 조급해하기보다 우리 경제의 체질과 구조를 바꾸어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정책을 시행하길 기대한다.
이종화 고려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