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욱, [포럼]‘남·북·중 對 미·일’ 구도 우려한다, 문화일보, 2018.03.29.
2018.07.05 1261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으로 북핵 퍼즐 풀기의 난이도가 높아지고 있다. 전광석화식 북·중 정상회담 성사로 한반도 비핵화 방정식은 3차에서 4차방정식으로 복잡해졌다. 한반도 북쪽에 지분을 가진 중국이 다시 상수(常數)로 복귀한 결과다. 3주간 두문불출하던 김정은은 집권 7년 만에 중국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국제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5월 미·북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2개월 안에 G2 국가와 정상회담을 하는 지도자는 평양이 유일할 것이다.
김정은·시진핑 정상회담은 북·중 양측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다. 김정은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세기적인 회담을 하기 전에 시진핑과 먼저 만난 것이 한반도 비핵화에 미치는 복합적인 영향은 무엇인가?
첫째, 김정은의 위상 또는 몸값이 높아졌다. 황제로 등극한 시 주석과 김정은 간의 회담으로 향후 중국의 대북 제재가 최소한 강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평양은 유엔 제재에 중국의 추가 동참을 우려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두만강·압록강 가의 밀무역 단속은 느슨해질 것이다. 양 지도자의 모두발언은 북·중 친선이 절정이었던 마오쩌둥-김일성, 장쩌민-김정일 회담을 상기시켰다. 김정은이 조·중 친선을 ‘숭고한 의무’라고 강조한 데 대해 시의 맞장구는 ‘친형제 같은 정’이었다. 김정은은 트럼프와의 회담에 앞서 든든한 후원자와 생명 및 여행자 보험계약을 한 것이다. 평양은 존 볼턴과 같은 강경 매파가 5월 협상 무용론을 주장하고 선제타격을 거론해도 순망치한의 우군인 베이징이 막아줄 것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둘째, 중국은 김정은의 방중으로 ‘차이나 패싱’ 우려를 불식했다. 트럼프의 무역전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시진핑은 북한 카드를 선보이며 미국에 역공을 시도했다. 중국에는 북한 비핵화보다 북·중 관계 회복을 통한 동북아의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이 시급하다.
끝으로, ‘평화 실현을 위한 단계적이고 동시적 조치’라는 김정은의 발언은 비핵화 여정이 복잡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동안 정의용 대북특사의 전언만 가지고 김정은의 복심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김정은의 비핵화 기조는 2005년 9·19 공동성명 당시의 ‘행동 대 행동’에 입각한 비핵화 프로세스를 강조한 것으로, 흘러간 옛 노래를 다시 부른 수준이다. 비핵화의 단계별 보상을 노리는 ‘살라미 전술’을 연상하게 한다. 특히, 한·미 양국 조치를 선(先)단계로 규정해 과거의 ‘시간 벌기’ 방식과 유사하다. 당연히 제재 완화와 한·미 연합훈련 중단 등이 일차 요구 사항이다. 김정은의 연설에서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이라는 등 기존 입장에서 달라진 것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결국, 북·중 정상회담은 청와대의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5월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절박성을 약화시켰다. 그동안 청와대는 북한의 비핵화와 그에 따른 종전(終戰)선언, 평화협정 문제를 단계적이 아닌 일괄 타결하는 방식으로 추진하겠다고 했으나 사실상 물 건너간 셈이다.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은 북·중 정상회담에 대해 ‘최대 압박’이 대화 분위기를 창출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향후 동북아 국제정치 구도는 북·중 대 한·미, 또는 남·북·중 대 미·일로 형성되면서 안갯속으로 내달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의 운전자론에 새로운 운전자가 나타난 것이다. 비핵화의 진전 없이 남북 관계 개선에만 주력한다면 한국의 중매외교는 좌초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