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욱, [남성욱칼럼] 김정은과 트럼프의 세기적 ‘핵 담판’, 세계일보, 2018.03.11.
2018.07.05 1344
현란한 북한 외교가 다시 시작됐다. 국제사회의 비핵화 압박을 단숨에 정면 돌파하려는 평양의 올인 전략이 가동된다. 무력 사용 등 다양한 옵션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우왕좌왕할 시간이 없다. 가시 돋친 설전보다는 승부구를 던져야 할 절호의 기회다. 남북은 물론 북·미 수뇌 상봉으로 국제정치의 판을 구조적으로 뒤집는 플랜이다.
한 달 상관의 평양, 서울 및 워싱턴 간 정상회담 카드는 6·25전쟁 이후 북핵 해결을 위한 전대미문의 초강수다.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2005년 9·19 공동성명 등 다양한 비핵화 시도가 있었으나 결과는 빈손이었다. 서류상의 합의는 이행되지 않았다. 외교관들이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 작성한 한 쪽 분량의 합의서는 실패한 외교사로 기록될 뿐이다. 이제 북한은 6차례의 핵실험으로 20기 이상의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운반수단을 보유했다. 초유의 북·미 간 정상회담이라는 외교적 해결을 시도하는 마지막 카드가 등장했다.
집권 6년차의 세계 유일의 3대 세습 지도자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강조하는 좌충우돌의 리더 간의 만남은 성사 자체로 흥행 성공이다. 선제적 타격이 심각하게 검토되던 상황에서 협상으로 비핵화 성과를 낸다면 올해도 노벨평화상은 확정된 셈이다. 5월에 판문점에서 양 정상이 비핵화와 북·미 수교를 선언한다면 계절의 여왕에 걸맞은 세기적인 빅이벤트가 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장밋빛 전망만으로 장미의 계절 5월을 기다려도 될 것인가. 33세의 젊은 3대 세습 독재자와 72세 고령의 비즈니스맨 출신의 노회한 지도자가 전격적인 회동으로 비핵화를 달성할 것인가. 포르노 배우와의 스캔들과 러시아 게이트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만남을 즉석 약속했지만 실제 성사까지는 여전히 미로다.
낙관적인 기대를 하지만 여건 조성이 불가피하다. 정상회담은 상호간 면식 확대 기회용과 실무 간 합의서 이행을 확인하고 독려하는 축제용으로 구분된다. 북·미 정상회담은 후자이다. 트위터와 선전매체로 상대를 조롱하고 비하하던 지도자들이 성과 없이 만날 수는 없다. 부동산 투자로 오성급 호텔까지 소유한 트럼프는 손익계산서가 확실해야 게임에 나설 것이다. 결국 사전에 상당 부분 합의가 돼야 한다. 금주로 예상되는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과 리용호 외무상의 북·미 간 스웨덴 면담은 일차 가늠자가 될 것이다.
역사적 반전을 기대하는 핵 담판은 기적도 아니고, 위험한 도박도 아니다. 구체적인 행동이 필수적이다. 우선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예비적 조치를 선행해야 한다. 2009년 북한 영변 핵시설에서 철수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복귀다. 사찰단의 복귀는 북한 비핵화의 진정한 의지를 시험하는 초기 관문이다. 이후 유엔 제재 중에서 민생용 성격이 짙은 거래를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핵무기의 동결만으로 모든 제재의 해제는 비즈니스 거래에 부합하지 않는다. 핵동결→사찰→비핵화→경제지원의 로드맵은 완벽하고 검증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로 가는 첩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