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욱, [시사풍향계-남성욱] 일체형 정보기관이 세계적 추세다,
2018.07.05 1831
1989년 동독 붕괴 시 주민들은 비밀 정보기관인 슈타지에 분노했다. 슈타지의 동독 주민들에 대한 감시, 압박, 테러 등 정치적 범죄는 악명이 높았다. 또한 서독에 대한 다양한 공작 및 간첩 활동을 전개했다. 매력적인 남성 공작원이 서독 내 주요 여성을 포섭하는 동독의 로미오 공작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개인비서였던 기욤이 1973년 동독 간첩으로 밝혀지자 빌리 브란트 총리가 사임하면서 슈타지의 활약은 절정에 달했다. 1975년 월남의 패망 역시 절반은 월맹 정보기관이 자행한 비군사적 공작의 결과였다. 월남 정부와 총사령부에서 이뤄지는 극비 회의 내용이 단 하루 만에 반정부 게릴라 단체인 베트남 임시혁명 정부청사에 보고될 정도로 티우 정권은 무기력했다.
이념과 체제가 다른 분단국가 간 첩보 활동은 숙명적이다. 북한 역시 국가보위성의 대내외 반탐(反探) 활동을 통해 불순행위를 적발한다. 남측에 대해서는 은밀한 체제전복 활동을 펼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지난해 말 당세포위원장회의에서 “비사회주의적 현상을 섬멸할 것”을 강조했다. 남한의 대공과 북한의 반탐 활동은 창과 방패의 싸움이다. 통일의 그날까지 결코 끝나지 않을 비군사적 심리전이다.
청와대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하는 권력기관 개편안을 발표했다. 국정원은 대외안보정보원으로 개편되고 대북·해외정보 수집에 주력한다. 과거 국정원의 정치 관여와 권력 남용의 근원을 제거하려는 의도는 이해되나 교각살우의 위험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우리 정보기관이 수사와 정보 수집의 분리형이 아닌 일체형 모델을 선택한 원인은 특수한 남북 분단 상황 때문이다. 북핵 위기로 한반도 안보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대공정보 수집 및 수사의 통합 기능은 불가피하다. 첩보를 수집해도 수사하지 못하면 대공 용의점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난 70년 동안 남한에 침투한 간첩 및 공작원 중에서 수사 이전에 본인의 임무와 소속을 밝힌 경우는 전무하다. 특히 음지에서 진행되는 북한의 대남 공작은 정보 수집과 수사가 동시에 진행돼도 윤곽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유오성 간첩단 사건처럼 무리한 수사 사례가 수사권 이관의 주된 명분이 되는 것은 곤란하다.
둘째, 대공수사는 북한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수많은 대남 공작기관 관련 인물을 오랫동안 추적 및 감시한 결과로 이뤄진다. 대공수사의 단서는 국내에서 포착하기도 하지만 상당수는 중국, 일본 등 제3국에서 수집된다. 관련 첩보를 정보화시키고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해외 정보활동이 중요하다. 결국 해외와 북한 및 국내가 동시에 작동되지 않고는 완전한 실체 파악이 어렵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발생한 김정남 암살 사건은 북한의 활동무대가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경찰도 어느 시점이 되면 음지가 무대인 대공수사가 가능하겠지만 양지에서 활동하는 경찰로서는 갈 길이 멀다. 외국 정보기관과의 공조도 경찰이 나서기에는 적절치 않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로 북한의 감시가 강화되는 시점에서 말을 갈아타는 것은 초짜와 베테랑의 대결을 예고한다.
마지막으로 정보기관의 정보와 수사 일체형 모델은 선진국의 추세다. 미국의 9·11 테러 이후 초국경적 범죄 사건이 대형화됨에 따라 정보 수집과 수사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일본은 북한의 테러·납치 위협이 고조되자 경시청 공안부, 외무성 국제정보국 등을 통합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직속 배치했다. 프랑스도 2008년 국내 정보기관(DST)과 경찰정보국(RC)을 프랑스정보부(DCRI)로 통합했다. 정보기관의 불신은 신뢰 구축 장치로 해결해야지 분단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적전(敵前) 무장해제는 시기상조다. 결국 수사권 이전은 상대를 와해시키려는 치열한 분단 현실을 무시한 탁상공론이라는 지적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86026&code=11171333&cp=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