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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남(중국연구센터장)_어느 정치학자의 고백을 통해서 본 중국의 정치변화에 대한 전망

2018.11.28 1180

어느 정치학자의 고백을 통해서 본 중국의 정치변화에 대한 전망

 

 

이정남(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중국연구센터장)

 

 

  최근 시진핑의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중국내의 비판적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보도가 언론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지난 5년 여 동안 진행된 막강한 권력집중과 권위주의 통치강화에 대한 중국 지식인들의 반대가 심상찮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러한 비판도 때늦은 감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일반적으로 1인당 GDP 3,000달러 내외가 되면 권위주의체제에 대한 민주화가 개시되었고, 그 과정에서 권위주의통치에 대한 비판과 민주화의 주장에 지식인들이 향상 앞장서 왔기 때문이다. 필자는 중국 역시 이런 선례를 따를 것으로 보고 그동안 중국의 정치개혁 과정에서 지식인의 역할에 주목해 왔다.

 

  그러나 중국의 현실은 필자의 예상과 달랐다. 중국의 1인당 GDP는 2017년 말에 이미 약 8,800달러에 달하였으며 조만간 1만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는 여전히 민주화로 향하는 뚜렷한 정치적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왜 중국에서는 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가? 중국 공산당의 주장대로 중국은 서구와 다른 중국식의 독특한 정치발전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인가? 중국의 정치발전이 과거 권위주의체제의 민주화과정과 다르게 나타나는 원인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필자는 바로 몇 주 전 중국의 정치체제와 정치개혁에 대해 장기간 연구를 해온 베이징의 한 권위있는 정치학자와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1958년에 태어난 그는 문화대혁명을 경험하였고, 이후 문화대혁명에 대한 비판과 함께 진행된 사상해방운동은 그에게 세상의 중심축이 변한 듯한 큰 충격이었다. 그는 그때부터 사유하기 시작했고, 서방국가를 방문하고 자유주의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유주의는 그의 사고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자리했다. 그는 중국도 경제가 발전하여 일정 단계에 이르면 민주화의 길로 나아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중국의 개혁개방 40년을 평가하면서 그의 사고에는 다시금 변화가 생겼으며, 이번에는 자유주의를 회의하기 시작했다.

 

  자유주의에 대한 그의 회의는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이 현실에서 감지되기 시작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2010년 중국의 GDP가 일본을 초월하여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등극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그는 중국의 경제발전이 정치적 민주화로 진행될 것이라는 기존의 생각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2010년부터 그는 몇몇 동료 정치학자들과 중국의 정치발전 과정을 다시 논의하기 시작했고, 2018년 5월에도 회의를 개최하여 마침내 하나의 컨센서스를 형성했다. 그것은 바로 중국의 정치발전경험에 기초해 볼 때, 중국의 정치발전 과정은 서방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는 자유주의적 민주화이론과 중국의 현실 간의 괴리 앞에서 중국의 전체 정치학계가 분화되기 시작했다고 일괄했다. 그동안 중국의 정치학계는 경제발전과 함께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자유주의적 시각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이제 자유주의자와 ‘중국의 길’을 모색하는 두 가지 시각이 본격적으로 분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이 아직은 민주화를 위한 시간이 오지 않은 과도기임을 강조하면서 현재의 중국 정치적 현실을 주시하고 있다면, 다른 학자들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중국의 길’(혹은 ‘중국식 민주’)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식 민주’는 “서구 민주주의의 ‘핵심’ 내용인 ‘다당제와 선거를 통한 지도자 선출’ 등을 빼고 그 자리에 중국식의 내용을 넣어 만든 새로운 정치모델”이다. 이것은 법치나 협상민주 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전통적 의미의 ‘민본’이라는 개념과도 차이가 있다.

 

  상술한 중국 정치학자와의 대화 내용에 근거해 보면, ‘부강’한 중국의 부상으로 이른바 ‘중국몽’의 실현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정치적 민주화의 문제는 당위적인 과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가 된 듯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중국의 지식인들은 현재 작금의 정치적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투쟁하는 민주투사가 되든지, 아니면 현실에 맞는 새로운 이론을 창조하는 이론가가 되는 길로 나서든지 해야 한다. 이러한 갈림길에서 민주투사로서의 목소리보다 중국식 정치발전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이 현실인 듯하다.

 

  이쯤 되면 왜 중국의 지식인들이 그동안 권위주의체제의 민주화를 위해 선두에 나서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된 듯하다. 중국의 다수의 지식인들은 서구의 민주화 과정에 대한 수용과 이를 위한 길로 나아가는 것을 당위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중국만의 새로운 중국식 정치발전모델의 창조로 관심이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권위주의통치에 대한 용감한 비판과 저항을 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변명일 수도 있지만, 필자의 눈에 변명으로만 보이진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바로 중국 지식인들의 사고 속에는 정치민주화보다 부강한 중국의 건설을 통한 중화민족의 부상이 중요한 목표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08년과 2010년을 거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미국의 쇠퇴가 거론되고 중국의 GDP가 일본을 추월하게 되면서 ‘중국식 길’에 대한 정치학계의 고민이 본격화되었다는 언급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중국이 민주화 없이도 부강한 중국을 만들 수 있겠지만, 이미 국제사회의 보편가치로 자리 잡은 민주주의가 실행되지 않는다면 중국 위협론의 지속적인 제기 속에서 국제사회의 매력적인 리더 국가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다수의 중국 지식인들이 국제사회와 주변국이 수용할 수 있는 ‘중국식’의 정치발전모델을 통해 인류문명 발전의 새로운 장을 열 가치와 이상을 제시하려는 고민을 하고 있음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고민은 아직까지는 부강한 국가건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국제사회와 주변국이 수용 가능한 선진적이고 문명화된 민주적 정치발전모델에 기초한 국가건설은 여전히 비전으로만 남아 있는 듯하다.   

원문: http://iss88.kr/niabbs4/bbs.php?bbstable=forum&call=read&page=1&no=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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