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화(소장)_[중앙시평] 북한이 베트남처럼 발전할 수 있을까?, 중앙일보, 2018.7.5
2018.11.30 1320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월 27일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한을 베트남처럼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북한이 공산당 일당독재를 유지하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한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채택할 가능성이 크다.
베트남은 1986년에 ‘도이머이(쇄신)’ 정책을 채택했다. 경제난으로 그해 물가상승률이 450%였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은 이미 개혁을 시작한 시기였다. 중국은 78년부터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소련은 85년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도입했다. 베트남은 도이머이로 농업 개혁, 배급제 폐지, 가격자유화, 국유기업 민영화, 시장 개방과 외국인 투자 유치 등 개혁 조치를 했다. 수출가공지구를 설립하고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중심의 수출산업을 육성했다. 베트남은 지난 30년간 연평균 6.7% 성장해 이제 일인당 국민소득이 2340달러인 중진국으로 도약했다. 수출 규모가 2100억 달러를 넘어 브라질·호주와 비슷한 수출 강국으로 성장했다.
북한은 지난 10년간 평균 경제성장률이 1%대이고 일인당 국민소득이 약 1300달러(한국은행 통계)인 세계 최빈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해 생산성이 매우 낮다. 그러나 북한은 천연자원, 산업 입지, 인력 등에서 경제개발에 유리한 조건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시장 개혁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대규모 해외 자본과 선진 기술을 유치해 사회간접자본을 건설하고 수출 주력산업을 육성하면 억눌렸던 경제가 튀어오르면서 과거 베트남처럼 빠르게 성장할 잠재력이 있다. 최근 연구들에 의하면 북한은 개혁 초기에 10% 이상 경제성장이 가능하다. 남한과의 정상적인 무역과 직접투자만으로도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3%포인트 추가 상승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제대로 개혁·개방을 할지 의문이다. 지난 4월 당 중앙위원회가 ‘경제건설 총력 집중’을 새 노선으로 채택했지만 경제개발계획의 실체는 아직 모호하다. 북한의 시스템은 낙후되고 불투명하고 의사 결정은 즉흥적이다. 경제 현실을 알 수 있는 제대로 된 통계자료가 부족하다.
이종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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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세계 경제에 정상적으로 편입해 무역, 직접투자, 금융 거래를 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베트남의 경험을 보면 도이머이를 시작하고서 한참 후인 93년부터 일본과 유럽 국가들이 본격적인 공적개발원조를 시작하고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ADB)이 원조와 차관을 제공했다. 국제금융기구가 자금을 지원하고 장기 투자의 안전이 보장되고 나서야 대규모의 해외 민간투자가 들어왔다. 북한은 지금 경제 봉쇄 제재를 받고 있다. 앞으로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이행해 유엔과 미국이 경제 봉쇄를 해제하고 국제 투자자금이 본격적으로 북한으로 유입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인권 탄압으로 비난을 받는 세습 독재국가인 북한이 국제사회에 정상적인 국가로 편입하는 것은 베트남보다 어렵다.
북한이 베트남의 길을 가려면 자본주의 시장 개혁과 개방을 하면서 정치·경제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 베트남과 중국은 점진적인 개혁으로 안정적인 체제 전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소련과 동유럽은 급진적인 개혁으로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이 매우 불안정했다. 북한이 체제 전환 과정에서 혼란을 겪거나 붕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의 경제 발전에서 한국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한반도 신경제 구상’으로 남북을 연결하는 철도·도로와 에너지망을 구축하려 한다. 민간 기업들도 북한에 진출하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찾고 있다. 국제사회가 대북제재를 점진적으로 철폐하면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재개부터 시작해 남북이 본격적으로 교류협력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대규모 남북 경제협력 사업들을 너무 서둘러 할 일은 아니다. 북한의 개혁 의지와 변화하는 속도에 맞춰 북한 주민들의 빈곤을 퇴치하고 생활수준을 개선하는 개발사업들부터 순차적으로 해야 한다.
북한이 앞으로 베트남처럼 성장하면 30년 후 일인당 소득이 1만 달러를 넘는다. 우리 경제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북한 경제 규모(GDP)는 남한의 약 44분의 1, 베트남의 7분의 1에 불과하다. 북한이 베트남처럼 발전하려면 안정적으로 체제 개혁과 개방을 하고 정상 국가로서 한국 및 세계 경제와 통합해야 한다. 장밋빛 환상에 젖기에는 너무 이르다. 한국은 국제사회와 협력하면서 장기적인 청사진을 갖고 북한의 체제 전환과 경제 발전을 도와야 한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https://news.joins.com/article/22774536
[출처: 중앙일보] [중앙시평] 북한이 베트남처럼 발전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