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투데이 2010. 10. 27] [이슈해설 : 이정남] 류사오보 노벨평화상 수상과 중국의 민주화
2010.11.05 4050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와 류사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중국 민주화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서구 선진국을 중심으
로 중국의 권위주의적인 정치체제에 대해 강력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중국정부와 관변언론은 서구식 민주주의와는 다른 ‘중국 특색을 지닌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있다.
최근 대중시위가 급증하고 있지만 정부에 저항하는 체제개혁운동으로 발전되고 있지는 못하다는 점에서 적어도 중단기적으로는 공산당이 주도하는 정치개혁은 결정적인 위협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벨 평화상, 내정 간섭인가 인류 보편적 요구인가
2010년 가을 중국의 민주화와 정치개혁에 대한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지난 8월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선전 경제특구 지정 30주년 기념행사’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인민의 요구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 “정치개혁을 하지 않으면 지난 30여 년간의 경제발전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발언이 출발점이었다. 특히 중국의 대표적 반체제 인사인 류사오보(劉曉波)의 노벨 평화상 수상결정은 이러한 관심을 더욱 더 증폭시키고 있다.
중국의 관변언론들은 “류샤오보에게 노벨상을 수여한 것은 중국 사법제도에 대한 무시이자 중국 내정을 간섭하는 폭력적 조치”라며 “노벨평화상은 서방의 일부 정객들의 도구로 전락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서방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점진적인 개혁을 이뤄가겠지만 서방식 정치제도는 중국이 지향할 목표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반면에 중국 공산당 원로간부 23명은 언론자유를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내놓았으며, 또한 100명 이상의 정치 운동가들이 온라인을 통해 류사오보의 석방과 정치개혁을 주장하면서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다.
‘중국적 특색을 지닌 민주주의’ 가능할까
이처럼 원자바오의 발언과 류사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계기가 되어 중국 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지만, 사실 정치개혁과 민주화문제는 1978년 개혁개방정책의 실시 이후 중국정부의 지속적인 관심 사항이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전 중국정부는 권력이 공산당과 최고 지도자에 과다하게 집중된 것이 중국 정치체제의 총체적인 병의 근원이라고 보고, 분권화를 핵심내용으로 한 정치개혁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천안문사태를 거치면서 분권화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를 강조했던 입장에서 후퇴하여, 정치개혁의 중심 내용이 행정개혁에 두어졌다. 그리하여 경제체제개혁과 이로 인해 초래된 사회의 구조적 변화에 조응하는 정치체제의 조정이 정치개혁의 중심 내용이 되었다.
그러나 개혁개방정책 30여 년을 평가하면서 중국정부와 지식인들은 정치개혁과 민주화문제에 다시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는 그동안의 고속성장에 기초한 개혁개방정책이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정치체제개혁이 불가피하다는 현실적인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2005년 10월 중국국무원이 발행한 『중국민주정치건설백서』나 공산당 최고 지도자의 연설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비롯한 모든 체제에서 보편적 가치를 지닌 것이며, 인류역사가 창조한 보편적 가치라는 견해를 제기하였다. 지식인들 역시 정치개혁과 민주화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면서, 정치개혁의 방향과 방식을 둘러싸고 매일 수많은 글을 쏟아내면서 치열하게 논쟁을 전개하고 있다.
보편적 가치로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인정함으로써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이끌어내었지만, 중국정부는 ‘중국적 특색을 지닌 민주주의’를 정치개혁의 기본방향으로 강조함으로써 서구식 민주주의를 추구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민주정치건설백서>와 17차 당대회 보고에 기초하면,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는 공산당의 영도, 인민주권과 법치주의를 기본 원칙으로 하고, 다당제나 경쟁선거, 3권 분립에 기초한 서구식 민주주의가 아닌 인민대표대회와 정치협상회의를 주요한 제도적인 형식으로 제기하고 있다. 또한 향후 민주주의를 실행할 수 있는 국가기구의 제도적 완비와 보다 민주화된 정책결정 및 집행과정의 이행, 그리고 민주적인 감독 및 제반 권리의 보장과 시민의식의 성장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기초해 볼 때, 현재까지 나타난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는 서구식 민주주의나 기존의 인민민주주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모델의 제시라기보다는, 기존의 정치제도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개혁개방의 결과 나타난 경제적, 사회적 변화에 조응한 공산당의 통치 거버넌스governance국정관리체계 구조에 대한 전환의 모색으로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중국정부는 정치개혁 방식에 대하여 공산당 내의 민주화를 통하여 사회의 민주화를 이룩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 공산당이 사회의 민주화의 돌파구로 당내 민주화를 강조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확대와 발전을 이끌어내는 정치개혁을 추진하고자 하기보다는, 현재의 공산당이 주도하는 권위주의 통치체제를 법치원리에 기초하여 통치방식을 보다 제도화하여, 정치적인 안정을 유지하면서 보다 점진적으로 중국적인 조건에 걸맞은 민주화 방향을 모색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 공산당은 과연 공산당이 주도하는 점진적이고 안정적인 정치개혁을 통하여 중국적 조건에 맞는 민주화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인가? 중국사회는 현재 경제의 고도성장의 결과 역설적으로 나타난 이른바 ‘성공의 위기’로 인한 대중 시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1993년 전국에서 대중시위가 모두 8,709건이 발생하였고, 1999년에 32,000건을 초과하였으며, 2003년에는 60,000건이 되었고, 2004년에 74,000건, 2005년 87,000건, 2006년에는 90,000 건을 초과하였으며, 그 이후로도 강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폭발적인 불만 표출은 중국 공산당이 정치, 사회적인 안정을 꾀하면서 성공적인 정치개혁을 추진하는 것에 엄청난 난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시위가 정부에 저항하는 체제개혁운동으로 발전되고 있지는 못하다는 점에서 적어도 중단기적으로는 공산당이 주도하는 정치개혁은 결정적인 위협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현재의 대중시위들은 경제적인 이권에 한정된 권리운동의 성격이 강하며 체제저항운동과 정치개혁운동으로 나아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중시위를 결집시켜내어 중국공산당에 저항할 조직화된 역량도 형성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천안문사태 이후 중국의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정치적인 움직임이 해외에서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또한 국내에서도 1998년 민주당을 건설하여 직접선거에 기초한 민주주의 건설을 주장하는 정치적인 움직임들이 있었다. 가장 최근인 2008년 12월에는 중국의 지식인과 전문가들 303인이 서명한 <민주장정>을 선언한 이후 서명자의 수가 1,500여명을 초과할 정도로 증가되는 등 과거와 달리 지식인 엘리트집단에서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공산당의 탄압에 의하여 해외 망명이나 산발적인 조직화 시도에 그치고 있다. 아직까지 시민사회내의 대중시위와 지식인들을 전국적인 수준에서 결집시켜낼 조직적인 지도부가 부상하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권위주의 체제의 개혁은 불가피
앞으로 중국사회 내부에서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과거보다 더 강하게 제기될 것이다. 그리하여 머지않아 중국 공산당은 어떠한 형식의 민주주의 모델이든 현재의 권위주의체제의 민주화를 추진하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다. 따라서 중국 공산당에게 현재 주어진 최대의 과제는 정치,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면서 민주화를 이끌어내는 정치개혁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는 지난 30여 년 동안 추진되어 온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의 성공적인 연착륙을 좌우하는 핵심적인 관건이 될 것이다.
이정남 |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HK 연구교수.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석사. 베이징대 정부관리학원 박사(중국정치 전공).『중국의 기층선거와 정치개혁, 그리고 정치변화』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