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1.9.22] [아침을 열며/9월 22일] 흔들리는 정당정치
2011.11.07 8531
[아침을 열며/9월 22일] 흔들리는 정당정치
정치권을 강타한 안철수 돌풍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안 교수가 서울시장 후보를 박원순 변호사에게 흔쾌히 양보한 보기 드문 드라마의 감동이 너무 컸기 때문인지, 대선 출마는 안 한다는 그의 거듭되는 언급에도 불구하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전히 박근혜 대세론을 위협할 수 있는 유력한 대선주자로 나타나고 있다. 안 교수를 통해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을 표출했던 상당수 국민들이 그가 다시 대선이라는 큰 무대에 오르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안철수 메시지' 까맣게 잊어
안 교수가 무대에서 사라진 이후에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현상은 그의 화려한 이력과 대중적 매력이 큰 이유이지만 기존 정당에 대한 깊은 불만과 실망이 구조적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17일 한국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주요 정당의 지지율은 이전 조사에 비해 뚜렷하게 하락하고 있는 반면, 지지 정당이 없다는 무당파의 비율은 지속적으로 올라 39%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철수 돌풍이 일시적 현상이라고 여기던 기존 정치권은 돌풍이 이어지는 모습에 당혹해하면서도, 이에 대한 대응은 지극히 단기적이고 안이하다. 민주당이나 한나라당 모두 민심이반과 지지이탈에 대한 대책은 없고 눈앞의 서울시장 선거에만 매달려 있는 모습이다. 특히 두 정당이 서울시장 후보 선출 과정에서 보이는 원칙 없는 행태와 혼선은 실망스럽다. 민주당의 경우 박 변호사가 안 교수와의 단일화로 범여권 후보로 급부상하자, 당내의 시장 후보들이 출마를 포기하거나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누가 민주당 후보로 선출되더라도 박 변호사가 범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되는 이벤트의 들러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경우에도 당내에 경쟁력 있는 후보가 있음에도 정당 밖에서 범여권 후보를 찾아 나섰다가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다시 태도를 바꾸는 원칙 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더욱이 범야권후보로 부상한 박 변호사가 민주당 입당을 고사하고 있고, 한나라당이 범여권 후보로 영입을 시도한 이석연 전 법제처장 또한 한나라당 입당을 거부하면서 독자출마를 고려하고 있는 현실은 한국의 정당정치가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대의정치의 핵심 역할을 수행해야 할 정당이 기피의 대상이 되고 정치의 중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작금의 사태는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면 매우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정당들과 기득권에 안주하는 행태를 보이는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시민들이 새롭게 등장한 인물과 세력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정당 없는 민주주의를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정당정치를 정상화하는 것이 한국정치를 업그레이드 시키는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점을 정치권과 국민 모두 자각할 필요가 있다.
과감한 개혁과 변화만이 살 길
흔들리는 정당정치를 정상화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정치권 스스로 극에 달한 국민들의 불만과 실망감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과감한 개혁과 변화를 통해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한 최우선적 과제는 만성적인 여야 정쟁과 대치정국을 끝내고 생산적인 정치를 복원하는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정치의 핵심적인 역할이 다양한 사회 갈등을 조정하고 완화하는 것인데, 최근 한국의 정치는 정치권이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한국의 정당들이 안철수 돌풍에서 나타난 경고의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변화와 쇄신에 나서지 않는다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성난 민심이 한국의 정당체제를 와해시키는 쓰나미로 닥쳐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원본링크: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109/h201109212121102437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