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제2대 소장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별세
2011.06.07 Views 9946
빈소 : 고려대 안암병원 영안실 301호
영결식 : 6월 10일 오전 8시(장소는 상동)
연구소 추모의 시간 : 6월 10일 오전 8시 30분 ~ 9시
(고인을 모신 장의차량이 장지로 가기 전에 연구소에 잠시 정차할 예정입니다.)
본 연구소 제2대 소장(1969. 9 ~ 1983. 2)을 역임하신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님께서 2011년 6월 7일 향년 91세의 일기로 타계하셨습니다.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서 수많은 사회공헌활동을 해 오신 김준엽 선생님이시기에 존함 뒤에는 언제나 ‘이사장, 총장, 이사, 소장, 교수’ 등 존경어린 직함이 뒤따라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김준엽 선생님’이라는 칭호가 한층 익숙하기만 합니다. 이는 김준엽 선생님께서 진정한 참스승으로서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이 컸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준엽 선생님께서는 1920년 8월 26일 평안북도 강계에서 출생하셨습니다. 신의주고보를 졸업한 김준엽 선생님께서는 일본 게이오대학교 동양사학과에 입학하여 학업에 정진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시 태평양전쟁의 패전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일본은 조선인 출신 학생들을 학도병이라는 미명하에 강제로 징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준엽 선생님도 전쟁 말기 일본의 전쟁동원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1944년 학도병으로 징집된 김준엽 선생님은 중국 서주에 주둔중이었던 일본 스카다 부대에 배속되었습니다. 하지만 김준엽 선생님은 징집 당시부터 계획했던 탈출을 실현에 옮깁니다. 그 후 김준엽 선생님께서는 중국 유격대를 거쳐서 한국광복군훈련반에 입소, 광복군이 되었으며 중경에 위치한 임시정부까지 6000리의 기나긴 ‘장정’을 하게 됩니다.
목숨을 건 탈출 당시 김준엽 선생님은 최선을 다했기에 당신의 운명을 천명에 맡기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때를 생각하면서 ‘盡人事待天命’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셨다고 합니다. 국내 최초 대학부설연구기관인 아세아문제연구소를 설립하시고, 부소장, 소장을 역임하시면서 본 연구소를 세계 유수의 연구기관으로 성장하는데 기여하신 김준엽 선생님의 활동상을 살펴보면 일본군 탈출 때부터 삼으셨던 좌우명을 실천에 옮기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949년부터 고려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신 김준엽 선생님께서는 조기준, 김정학 교수와 함께 본 연구소의 설립을 기획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연구소 하나를 설립하자는 데 목적을 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대부분의 대학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엘리트 육성이라는 좁은 영역에 그 역할을 한정 짓고 있을 때, 장기적 지식 기반 구축에 대학이 나서야 한다는 선도적 문제를 제기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1957년 6월 17일 한국 최초 대학부설연구기관으로 아세아문제연구소가 탄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세아문제연구소 설립 당시 한국사회는 한국전쟁의 여파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교내 연구비 지원도 한계가 있었으며, 국내 기업 역시 연구비 지원에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김준엽 선생님은 연구비 수주와 연구공간 확보를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포드재단, 하버드 옌칭연구소, 아시아재단, 독일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 문교부, 통일원 등으로부터 연구비를 수주할 수 있었습니다.
아세아문제연구소는 1966년 10월에 독자적인 연구소 건물을 준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국내 학자들에게는 연구비를 지원하고, 신진연구자들에게는 연구공간 제공 및 재정적인 지원을 통해서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토양를 마련해 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본 연구소는 척박한 국내 연구 현실 속에서 사회에 필요한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데 일익을 담당할 수 있었습니다.
<1970년 6월 17일, 아연 창립 13주년 기념 촬영, 김준엽 선생님은 뒷 줄 좌측에서 5번째>
<1972년 신년회 기념 촬영, 김준엽 선생님은 두번째 줄 좌측에서 네번째>
연구소의 우수인재 양성 노력은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세계와 경쟁하려면 무엇보다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김준엽 선생님의 평소 철학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김준엽 선생님께서도 연구소를 거쳐간 석박사 과정생들이 어느덧 국내 중진/원로학자로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모습에서 보람을 느끼신다고 회고하시기도 했습니다.
설립 당시 김준엽 선생님은 ‘아시아의 시선으로 아시아를 연구하자’는 생각을 갖고 계셨습니다. 이는 연구소의 설립 목적인 '아세아 제 민족의 문화, 역사, 정치, 사회, 경제 등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국제적 이해와 협력적인 발전에 학문적으로나 정책적으로 기여한다'는 내용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설립 목적 아래 김준엽 선생님은 공산권 연구 및 구한국외교사료 편찬을 본격적으로 추진했습니다. 아울러 <아세아에 있어서의 근대화 문제(1965)>, <한국 통일문제(1970)>, <한국의 미래(1973)> < <동북아시아에 있어서의 안보와 전략의 문제(1978)> 학술대회를 통해서 한국과 아시아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모색하는 장을 마련하였습니다.
<1970년 <한국통일문제> 국제학술회의에서 개회사를 하는 김준엽 선생님>
<1979년 12월 <한ㆍ일 양국의 지적 교류>국제학술회의, 첫번째 줄 좌측에서 세번째가 김준엽 선생님>
이렇듯 김준엽 선생님은 27년 남짓 본 연구소에 재직해 오시면서, 좁게는 본 연구소의 발전을, 나아가서는 한국의 학문 발전에 이바지해오셨습니다. 김준엽 선생님께서는 본 연구소를 떠나신 지 30여년이 지나셨지만, 본 연구소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셨습니다. 당신께서 만드신 연구소 건물이 리모델링하고, 인문한국사업(Humanities Korea:HK)과 함께 제2의 도약을 시작하려는 2009년에 누구보다 먼저 연구소를 찾으셔서 당신께서 걸어오신 길을 이어가는 후학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아끼시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김준엽 선생님의 가르침을 직접 들을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본 연구소는 김준엽 선생님께서 걸어오신 길, 특히 본 연구소의 발전을 위해서 당신의 교직 생활 거의 전부를 바쳐오신 크나큰 뜻을 계승하여 세계적인 지역학 연구소로 도약하기 위해서 노력을 계속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09년 3월 <고려대학교와 아연-원로 역사학자의 회고>에서 강연 중이신 김준엽 선생님>
<2010년 11월 본 연구소 출판부에서 나온 <김준엽선생님 기념서 : 동아시아 국제관계사>
출판기념회, 앞 줄 가운데 김준엽 선생님>
1. 김준엽 선생님 약력
1920年 8月 26日 平安北道 江界 출생
1940년 3월, 新義州 東中(5年制) 卒業
1944년 1월, 日本 慶應大學 東洋史學科 中退
1944년 1월, 일본 학도병 강제징집
1944년 3월, 일본 스카다 부대 탈출, 中國遊擊隊에 참가, 抗日運動
1945년 1월, 重慶 大韓民國臨時政府에 참가
1945년 4월, 光復軍 第二支隊長 李範奭將軍의 副官 (西安)
1945년 11월, 光復軍 總司令官 李靑天 將軍의 副官 (重慶)
1948∼1949년, 中國 國立中央大學 大學院 修學
1951∼1955년, 國立臺灣大學에서 硏究
1958∼1959년, 미국 하버드대학 객원교수
1968∼1969년, 미국 하와이대학, 프린스턴대학 객원교수
1971년 2월, 건국대학교 명예법학박사
1984년 5월, 연세대학교 명예문학박사
1999년 2월, 아주대학교 명예경영학박사
1949∼1982년, 고려대학교 사학과 조교수, 부교수, 교수
1957∼1982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발기인, 부소장, 소장
1982∼1985년, 고려대학교 총장
1988~2011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1988∼2011년, 재단법인 社會科學院 이사장
1989∼1999년, 학교법인 大宇學園 (亞洲大學校, 巨濟專門大學, 大川專門大學의 財團 ) 이사장
1992∼1999년, 大宇獎學財團 이사장
1992년 10월, 중국 杭州大學의 명예교수
1993년 8월, 중국 北京大學의 명예교수, 北京大學의 韓國硏究中心의 고문
1993년 8월, 중국 遼寧大學의 명예교수
1993년 11월, 중국 上海 復旦大學의 명예교수
1994년 1월, 중국 杭州大學 韓國硏究中心의 고문
1994년 10월, 중국 山東大學의 명예교수
1996년 12월, 중국 北京語言文化大學의 명예교수
1997년 4월, 중국 南京大學, 東南大學의 명예교수
1997년 5월, 중국 吉林省 社會科學院의 명예교수
1999년 11월, 중국 浙江大學의 명예교수 및 同大學 韓國硏究中心의 고문
2001년 10월, 중국교육국제교류협회의 고문
2001년 10월, 중국 揚州大學 中韓文化及崔致遠硏究中心의 고문
2002년 2월, 중국 揚州大學의 명예교수
2002년 8월, 중국 靑島市 社會科學院 中韓合作硏究中心의 수석고문
2006년 6월, 중국 延邊大學의 명예교수
2008년 3월, 중국 中山大學 韓國硏究所의 고문
1955∼1972년, ‘中國學會’의 발기인, 부회장, 회장
1979∼1992년, ‘韓國共産圈硏究 協議會’의 발기인, 회장, 명예회장
1992∼2011년, ‘韓國地域硏究 協議會’의 명예회장
1989∼2004년, 《계간 사상》발행인
1996∼2011년, ‘韓中人文學會’의 고문
기타, ‘歷史學會’이사(現),‘國際政治學會’ 명예이사(現),
중국 南京大學 교우회 명예이사(現)
1961년, 제 16차 UN총회의 한국대표
1962년, 제 17차 UN총회의 한국대표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의 자문위원
1974년, 제 29차 UN총회의 한국대표
1981∼2011년, 韓國獨立有功者協會 지도위원, 韓國光復軍同志會 지도위원
2. 저술
1) 《中國共産黨史》(1958년, 사상계사)
2) 《中國最近世史》(1963년, 사상계사), (增補版, 1967년, 동아출판사), (修正版, 1971년, 일조각)
3) 《韓國共産主義運動史》, 제 1∼5권 (1967∼1976년, 고려대학교 출판부)
4) 《中共圈의 將來》(編, 1967년, 범문사)
5) 《孫文 胡適》(編, 1968년, 범문사)
6) 《中共과 아시아》(1979년, 일조각)
7) 《南北統一問題와 그 周邊》(1979년, 일조각)
8) 《北韓의 오늘과 내일》(1982년, 법문사)
9) North Korea Today(스칼라피노 교수와 共編, 1983년, Univ. of Calif. Press)
10) 《新版: 韓國共産主義運動史》, 전 5권(1986년, 청계연구소)
11) 《長征》, 전 4권(1987∼1990년, 나남출판)
12) 《歷史의 神》(1990년, 나남출판)
13) 《長征》, 日譯本(1991년 12월, 일본 光文社)
14) 《石麟 閔弼鎬傳》(編, 1995년, 나남출판)
15) 《我的長征》제 1∼4권 (1995∼2008년 7월, 중국 東方出版社)
16) 《나와 중국》(《我的長征》, 1997년, 나남출판)
17) 《長征 제 5권, 다시 대륙으로》(2001년 11월, 나남사)
18) 《金俊燁回憶錄 五 - 我的長征》(제5권)(2002년 11월, 중국 遼寧民族出版社)
19) 《申圭植·閔弼鎬와 한중관계》(중국 石源華 교수와 共編, 나남사)
20) 《신판: 長征 전 5권》(2003년 8월, 나남사)
21) 《나와 中國(續)》(2008년 5월, 나남사)
22) 《歷史의 神(續)》(2008년 5월, 나남사)
3. 역서
1) 《中쏘外交史》(Henry Wei, China and Soviet Russia, 1958년, 중앙문화사)
2) 《中國안의 소련》(蔣中正著, 《蘇俄在中國》, 共譯, 1959년, 중국학회)
3) 《共産政權下의 中國》(周鯨文著, 《風暴十年》, 1963년, 사상계사)
4) 《잃어버린 대지》(Robert Roh, Escape from Red China, 1964년, 탐구당)
5) 《쏘련 통치사》(Merle Fainsod, How Russia is Ruled, 1967년, 중앙문화사)
4. 편찬
1) 《舊韓國外交文書 및 附屬文書》編纂 總責任(30권, 1965∼1974년, 고려대학교 출판부)
2) 《北韓硏究資料集》제 1∼9집 (共, 1969∼1980년, 고려대학교 출판부)
3) 《韓國現代史》(共, 1969년, 신구문화사)
4) 《大世界史》(明淸時代 監修, 1971년 현암사)
5) 《六堂 崔南善全集》편찬위원회 위원장(共, 15권, 1973∼1974년, 현암사)
6) 《舊韓國外交關係附屬文書 間島案》(共, 1974년, 고려대학교 출판부)
7) Encyclopedia Britanica (International Edition)의 한국부문 편찬위원장
8) 《TBS フリタニカ 國際大百科事典》의 한국부문 편집위원장
9) Asian Survey 편찬위원회 위원(Univ. of Calif. Press, Berkeley)(現)
10) <중국연구>(China Studies)고문, 北京大學 中國國政硏究中心 刊(現)
11) 雜誌 《등불》編輯員 (中國 安徽省 臨泉과 四川省重慶에서)
12) 월간 《思想界》지의 편집위원, 주간, 부대표(1955년 4월 ∼1962년 8월)
13) 《브리태니커 세계대백과사전》명예편집위원장(1988년 11월∼현재)
4. 상훈
1963년 獨立運動有功 表彰狀
1970년 國民勳章(冬栢章)
1980년 建國褒章
1983년 平北文化賞
1985년 國民勳章(牧丹章)
1988년 韓國日報 제28회 著作賞
1990년 建國勳章(愛國章)
1999년 愛書賞
2000년 中國 敎育部의 勳章(中國語言文化_)